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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고속도로 사통팔달 뚫리고… 시속 300㎞ 고속鐵 달려오고 지방공항 날개 접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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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고속도로 사통팔달 뚫리고… 시속 300㎞ 고속鐵 달려오고 지방공항 날개 접을판

입력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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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오만하다. 수십, 수백 톤에 이르는 그 육중한 쇳덩어리가 떠오르는 광경이며, 수만 수십만 쇳조각들이 맞물려 추진하는 그 속도는 가히 위압적이다. 접근하는 길도 고행이다. 도심 정체를 헤집고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또 탑승·보안수속은 좀 복잡하고 까다로운가. 기상이다 뭐다 가리는 것도 많아 좌석에 앉기 전까지 마음을 졸여야 한다. 그런데 시속 700∼900㎞대 극상의 속도로 만년 우쭐댈 것 같던 그 비행기가 시속 300㎞인 고속철도의 도전에 무기력하게 날개를 접게 됐다. 물론 항공사가 아쉬울 것은 없어 보인다. 어차피 국내노선이야 적자였으니, 울고싶던 차에 뺨 때려 준 격이다. 기다렸다는 듯, 각 항공사는 지방노선 폐쇄·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다급해진 것은 지방공항과 지자체들. 특히 만성 적자에 허덕여 온 공항들로서는 활로를 찾을 일이 발등의 불이다. 1948년 5월 민항기(김포―제주) 취항 이래 처음 맞게 된 국내 항공시장의 대격변이다.

12일 오전 8시 대구 동구 지저동 대구국제공항. 김포발 B-737여객기가 승객을 부려놓자 너른 공항대합실에 생기가 돈다. 그래 봐야 100여명. 대부분 일과 시작시간(오전 9시)에 목적지에 닿아야 하는 사정이 있을 법한 이들이다. 엉겁결에 선잠 깬 듯 잠시 부산하던 대합실은 인파가 사라지자 이내 적요해졌다. 이제 대합실에는 중국 몇몇 도시를 드나드는 전세항공편 승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게 전부다. 고철 무역업을 하는 한성욱(35·경북 경주시 황남동)씨는 선양(沈陽)행 중국남방항공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경주에는 대구공항 오는 리무진도 없어서 대부분 김해공항으로 가지만, 여기는 중국 항공사라 운임이 좀 싸요." 두 달에 한 차례씩 중국을 드나든다는 그는 번거롭더라도 두 번에 한 번 꼴은 인천공항을 이용한다고 했다. "여기는 면세점이 편의점 수준이거든요." 소비자의 판단이란 대개 매정한 게 현명한 것이기 쉽다.

대구공항은 5·16군사쿠데타 직전인 1961년 4월 개항했다. 60∼80년대 국토개발의 중심 축에 서면서 지속 성장을 구가했고, 그 사이 청사도 4차례 신·증축했다. "대구·경북 인구가 540만이고, 달성·구미 등 대형공단만도 주변에 8갭니다. 한 마디로 황금노선이었죠." 대구공항공사 오승철(48) 운영팀장은 그 같은 성장세는, 여느 지방공항도 마찬가지이지만, 97년 IMF를 겪으면서 꺾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금 회복되나 싶던 국내선 수요는 2000∼2001년 잇달아 개통된 서해안·중앙·대진·천안-논산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확장으로 정체기미를 보였고, 9·11테러에 이라크전쟁,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까지 겹치면서 경기가 급랭, 다시 타격을 입는다. 89년 여당 국회의원의 '21세기 비약성장' 구호와 함께 개항, 하루 6편씩 운항하던 경북의 오지 영천공항이 중앙고속도로 개통(2001년)으로 시난고난하다가 끝내 운항노선이 없어진 것(2003년 말)도 같은 연유. 그런데 이번에는 지방공항들이 고속철도 개통이라는 치명타를 맞게 된 것이다.

대구공항은 고속철도 개통의 직격탄을 맞게 된 곳이다. 경부고속철도 전용선(광명―동대구) 구간과 개통과 맞물려 고속철도의 경제효과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노선인 탓에 승객 감소율이 건설교통부 추산 65%, 항공사 추산 80%에 이를 전망. 대한항공은 하루 18편(왕복9회) 운행하던 김포―대구 운항편수를 4편으로, 아시아나 역시 16편에서 4편으로 감축키로 했다. 그나마도 아예 폐쇄한다는 것을 지난 달 대구시와 경북도, 상공인단체, 관광협회, 공항공사 등이 양 항공사 사장을 만나 항의반 애원반 매달린 결과라는 게 공사 관계자의 전언.

눈오면 활주로 진입로 청소부터 항무통제에 이르기까지, 관제를 제외한 공항시설의 운영·보수·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곳이 공항공사다. 수익구조는 크게 항공수익과 비항공수익으로 나뉜다. 항공수익은 항공기 톤당 착륙료와 계류장 정류료, 조명료 등을 산정해서 받는 돈이고 비항공수익은 시설 임대료와 주차료가 주된 수입원. 대구공항의 경우 35개 입점업체 가운데 3곳이 지난 해 말부터 계약을 해지, 임대보증금을 찾아갔고 나머지 업체 대부분도 고속철도 운행이 시작되는 4∼5월께 계약이 만료되는 만큼 재입찰에 응찰하지 않거나 입찰 예정가의 대폭 삭감을 기대하는 눈치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공항공사로서는 당연히 기획예산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형국. 지난 해 1,000억원대의 적자를 본 공사는, 올해 고속철도로 인한 손실규모 만도 252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IMF전 3,000명이 넘던 직원(청원경찰 포함)이 현재 1,800명 수준이라요. 비행기 한 대 띄우나 열 대 띄우나 공항운영 최소 인원은 그대론데…." 공사 직원은 행여나 또 다시 구조조정 바람이 불까 '우야꼬 우야노'를 연발하고 있다고 했고, 분위기는 양 공항사 파견 직원들도 마찬가지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교통개발연구원측은 일부 지방공항은 폐쇄를 면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항공산업은 점(點)의 산업이다. 점이 지워지면 인력이든 시설이든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우리 뿐입니꺼. 공항보고 장사하던 불모동 지저동 사람들 속도 적잖이 탈끼라요." 아닌 게 아니라 농협 공항지점 곁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52·여)씨는 연신 한숨이다. "은행 빚내서 장사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 카이께네 딱 잠도 안오네요." 죽은 아들 불알 붙드는 심정이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빛이 밝으면 그늘도 짙은 법이지만, 시선은 스포트라이트가 머무는 곳을 좇기 마련. 지방 공항을 끼고 살던 이들의 한숨은 고속철도 개통의 팡파레에 묻혀 있다. 397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돼 사실상 신축공정을 끝낸 둥근 유리벽의 동대구 고속철도 역사는 대구공항에서 택시로 불과 10분 거리였다.

/대구=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인천공항을 제외한 15개 지방공항 가운데 흑자 공항은 김포 제주 김해 등 3 곳에 불과하다. 1980년 국제공항관리공단 설립 이후 한국공항관리공단(90년), 한국공항공사(2002년)로 개편되는 동안 공사의 자립·자구노력이, 늦었지만, 지금처럼 치열했던 적은 없었다. 이제는 철도 도로 뿐 아니라 제 식구인 인접 공항과의 경쟁도 불사해야 할 판이다.

지방공항들은 해당 지자체, 지역 상의, 관광협회 등과 공동으로 지난해 '공항활성화추진위'를 구성했다. 동남아 중국 일본 등 주요도시로 마케팅팀을 파견, 청주 대구 등 일부 공항은 전세기 수준이지만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청주공항의 국제선 비율은 무려 9.7%로 급신장, 대구(5.5%) 제주(2.7%)를 앞질렀다. 강원(양양) 대구·경북(대구) 등은 국제선 승객 모객시 1인당 1만∼2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수학여행단 유치시에도 별도의 수당을 주는 안을 내놓았다. 원주·양양공항등은 노선 유지에 따른 항공사의 적자를 강원도가 보전해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지자체와 관련기관들이 부담해서 주차료를 할인·면제하고 보안검색 시간과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연구중이다. 김해 대구 광주공항은 지하철을 유치하는 방안을, 여수공항은 고속도로 IC를 설치하는 안을 지자체와 협의중이다. 항공사 CIP라운지 이용 대상 확대와 주말·공휴일 요금할증제 폐지·개선 등 안을 만들어 양 항공사 설득에 나설 참이기도 하다.

다만, 지방공항들이 해외 공항마케팅에 경쟁적으로 나섬에 따라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경쟁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지자체라고 노선 유지비용을 무한정 감당하는 것도 어렵다. 자구노력의 성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의 근거다.

하지만 전망이야 어떻든 그 외의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고, 통일시대까지 버텨내는 것이 숙제다. 교통개발연구원 김연명 연구위원은 "고속도로 1㎞ 건설에 약 200억원이 들지만, 10㎞ 닦을 돈이면 공항 하나를 세운다"고 했다. 통일이 되면 사정이 지금과는 또 달라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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