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최영의란 분이 계셨지. 전 세계를 돌며 맞장을 뜨신 분이다. 그 분 스타일이 이래.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 그러면 상대는 어어 하면서 막게 돼 있어. 그때 팔을 딱 잡아. 이것은 네 팔 아니냐, 그러면서 그냥 내려치는 거야. 부러질 때까지 쳐."영화 '넘버3'에서 송강호의 대사다.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이자 '배달'로 알려진 전설의 싸움꾼 최영의(1922∼94)를 소개한 이 대목을 보면 우직한 싸움꾼이 연상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우직함보다는 바람처럼 빠른 날렵함과 가공할 파괴력으로 승부를 건 무도인이었다.
평소 말이 없기로 유명한 우직한 배우 양동근(25)이 전설의 싸움꾼으로 변신한다. 최영의의 무용담을 다룬 양윤호 감독의 정통 액션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 주인공 최영의 역을 맡은 것. 그는 요즘 세계의 유명 무도인들을 꺾고 황소의 뿔을 맨 손으로 잘라낸 최영의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기 위해 일본 나고야 근교인 메이지무라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일본 메이지 시대 풍경을 재현해 놓은 메이지무라의 가라테 도장. 홀로 입산수도를 마치고 내려온 최영의가 니조 10걸로 통하던 가라테의 고수 10명을 찾아다니며 격파하는 장면을 촬영중이다.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가발을 쓴 양동근이 누더기 도복을 걸친 채 가라테 고수역을 맡은 일본 배우를 노려보고 있다. 감독의 "액션!" 소리가 떨어지자 양동근이 제자리에서 몸을 솟구쳐 회전하며 상대를 걷어찬다. 두 사람이 쓰러지며 낸 상당한 크기의 충격음이 주변에 서 있던 촬영팀과 취재진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양동근이 고통스러워하며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한다. 고난이도 액션이 많아 이번 영화는 이처럼 부상이 잦다.
"거짓 액션이 아%6닌 진짜 액션을 보여줄 생각"이라는 양감독의 주문을 따르려면 어려운 무술 동작을 양동근이 직접 소화해야 한다. "지난해말 부산 극진회관 지부에서 3박4일동안 훈련을 받았고 이동하는 중에도 아령을 들며 몸을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대신 마음의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마음의 준비란 사랑하는 일본 여인 요우코(히라야마 아야)를 사이에 두고 연적 가토(가토 마사야)와 벌이는 싸움, 스승이나 다름없던 머슴 범수(정두홍)의 죽음, 친구 춘배(정태우)와의 우정 등을 통해 드러난 최영의의 갈등과 고민이다. "액션보다 이런 모습을 통해 최영의의 실제 모습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실존 인물이라는 부담은 있지만 감독님과 배역 분석에 대한 의견이 같아서 사랑, 우정 등 인간적인 면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무술도 문제지만 또 다른 어려움은 일본어 연기. 따로 일본어 교사를 두고 정태우와 함께 발음을 녹음해 가며 공부를 하고 있다. "배운 적이 없어서 많이 어려워요. 그런데 제일 힘든 것은 음식이에요. 한국과 양념이 틀려서 그런지, 얼굴에 버짐이 피고 그러네요."
힘들다는 푸념을 하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일본의 유서깊은 곳을 두루 돌면서 촬영을 하거든요.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있겠어요. 좋은 풍경을 많이 보니 정서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다행히 일본 배우들과도 호흡이 잘 맞구요. 좋아요."
그는 "7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이 진행되니 빡빡한 일정 때문에 제대로 쉴 틈이 없다"며 인터뷰가 끝나자 밤 촬영을 위해 차가운 냉기가 감도는 촬영장으로 달려갔다.
/나고야=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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