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베를린영화제 수상으로 한국은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감독상을 모두 배출한 '예술영화 나라'로 대접받게 됐다. 우리 영화계가 관객이 폭발하며 연일 신기록을 쏟아내는 산업적 팽창세와 더불어 질적으로도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아시아 최고 영화대국'이라는 찬사가 무색하지 않다.특히 제작비 5억원, 11일간 15회 촬영한 초저예산 영화 '사마리아'가 쟁쟁한 세계적 감독의 작품을 물리치고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저예산예술영화의 수준까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영화계의 이단아' '아웃사이더의 수호자'로 불리는 김기덕 감독은 임권택 이창동 홍상수 감독과 더불어 해외영화제가 가장 사랑하는 감독이다. 2000년'섬', 이듬해 '수취인 불명'이 베니스영화제, 2002년 '나쁜 남자'가 베를린 영화제에 진출했고 그 해 체코의 카를로비바리 영화제는 당시 데뷔 6년차인 감독의 회고전까지 마련하는 등 유럽에서의 김기덕 열광은 대단하다.
김기덕 감독의 수상은 예술영화를 선호하는 유럽영화계에서도 상당한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조교제를 하는 두 여고생 여진(곽지민)과 재영(서민정), 경찰 아버지(이얼)의 갈등과 화해로 짜인 '사마리아'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예수에게 물을 떠준 사마리아인 창녀처럼 진정한 사랑과 구원에 관한 작품. 국내에는 3월12일 개봉한다.
하지만 김기덕 영화가 늘 그렇듯 평가는 엇갈린다. 원조 교제 여고생이 섹스를 통해 남자들을 정화한다는 파격적인 설정, 경찰인 아버지의 처절한 사적 복수가 과연 어떻게 구원이나 화해와 연결되는지 모르겠다는 게 현지 평론가의 비판적인 반응이다. 도덕률을 넘어선 영화적 도발이 새롭다는 평도 많았으나, 현지서 발행되는 데일리 중 하나가 별 한 개(다섯개 만점)를 줄만큼 반응이 엇갈렸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김 감독의 수상을 발표한 자리에서 함성과 야유가 동시에 터져 나와 해외에서도 '김기덕 마니아'와 '안티 김기덕'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김기덕 감독의 수상은 의미가 각별하다. "평범하고 표준에 따르는 영화보다 독자적인 철학을 유지한 것을 심사위원단이 높이 사 준 것"이라는 감독의 말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충격적인 영상과 '상식'의 잣대로는 이해되지 않는 영화적 설정으로 그는 영화제마다 화제를 만들었다. 2000년 베니스영화제의 '섬' 시사회에서는 성기에서 낚시 바늘을 빼내는 장면에서 관객이 졸도했고, '나쁜 남자' 시사회에서는 일부 관객이 구토를 했다.
하지만 세계 3대 영화제는 결국 우직한 한국 작가 영화의 손을 들어 주었다. 임권택 감독은 판소리 '춘향뎐'으로 2000년 칸 본선에 처음 진출한데 이어 2002년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처절한 리얼리스트 이창동 감독은 중증장애인과 전과자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오아시스'로 베니스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일본, 중국, 홍콩, 베트남 등이 한 때 '영화제 특수(特需)'를 누린 적이 있었으나, 최근 한국영화에 쏟아지는 해외영화제의 러브 콜은 어느 나라도 누리지 못한 것이다.
안으로는 1,000만명 관객시대, 밖으로는 해외영화제에서의 연속 수상. 내실까지 갖추며 화려하게 성장한 한국영화가 이제는 세계 영화시장에 본격 진출할 원동력을 갖췄다고 자부할만하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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