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만 클리닉을 찾는가? '뚱뚱하기 때문에'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한번도 비만 클리닉에 가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더 날씬해지려고'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한번쯤 비만 클리닉을 가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실제 비만 클리닉을 찾은 환자들이 밝히는 이유는 다르다.'길거리에서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줘서' '아이가 창피하다며 학교에 못 오게 해서'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남편과 아이가 상대를 안 해주고 지나간 세월이 무상해서'…. 이처럼 뚜렷한 목적이 있으면 감량에 성공할 확률도 더욱 높다. 그러나 많은 비만 클리닉 의사들의 경험으로 환자 중 절반은 3개월 프로그램 도중에 하차하거나 다시 몸이 불어 찾아온다. 대한비만체형의학회에서 '유형별 환자관리'에 대해 발표했던 오동재(미소비만클리닉) 원장과 서울백병원 비만클리닉 강재헌 교수의 도움말로 유형에 따른 체중조절 실패원인과 처방을 알아보자.
'식사 일기'를 써보세요
최대의 난적-심지 굳은 아줌마
"저 원래 조금 먹어요." "글쎄 더 물어볼 필요도 없어요. 먹은 게 없다니까요."
비만 클리닉의 의사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환자는 바로 40∼50대 아줌마들이다. 동창회, 학부모회, 계모임에 꼬박꼬박 나가 퍼질러 앉아 먹기를 좋아하고, 밥 대신 튀김을 실컷 먹고도 "조금밖에 안 먹었다"고 우긴다.
그러다 보니 식사조절이나 운동 등 숙제엔 소홀하다. 진료 전날에야 종일 굶거나 아예 진료를 빼 먹는다. 의사가 조금만 타이트하게 체크를 하면 부담스럽고 창피해 아예 발길을 끊어버린다. 아무리 좋은 약도 식사조절과 운동을 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실패한다. 치료효과가 좋을 경우 동네 아줌마들을 떼로 몰고 온다는 점만 빼면 의사에겐 가장 골치 아픈 유형이다.
■ 처방 "물만 먹어도 찐다"는 사람이라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자기 생각보다 더 먹는 게 없는지 식사일기를 꼼꼼히 적는 것이다. 단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실제 먹은 양보다 줄여서 식사일기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 일기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섭취를 줄일 수 있다.
둘째는 적게 먹는다고 해도 먹는 음식의 종류가 문제되는 경우다. 이 땐 식사습관을 바꿔야 한다. 고지방 육류, 튀김류보다 현미, 잡곡, 야채, 채소 등 당지수(GI index)가 낮은 식품으로 대체해 늦게 흡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자주 굶으면 더 쪄요
빼고 또 빼고-20대 미혼 여성
"다음 달까지 48㎏로 만들어야 돼요." 젊은 미혼 여성 중엔 살 빼기에 조급증을 가진 경우가 많다. 결혼식, 야외촬영 일정에 촉박하다거나, 남자친구로부터 채여 "멋지게 다시 태어나리라"는 복수심에 불타는 경우다. 또는 그저 완벽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다이어트를 일상적으로 반복하곤 한다.
이럴 경우 늘 적게 먹는다는 점이 오히려 실패요인이 되기 쉽다. 신체가 에너지 공급량에 적응해 에너지 소모 자체를 줄여버리기 때문이다. 즉 신체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생존에 필수적인 기초대사량으로 쓰는데 적게 먹으면 신체가 비상상황을 선포, 지방뿐 아니라 근육을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쓴다. 근육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조직이라 근육이 줄면 더욱 먹은 만큼 지방으로 축적돼 조금만 먹어도 더 잘 찐다. 중년 여성 중에도 적게 먹는데도 살이 찌는 사람이 있다.
■ 처방 기초대사량을 높이는 생활습관이 중요하다. 끼니를 거르거나 단식을 반복적으로 하면 기초대사량이 더 떨어진다. 때문에 단식을 하지 말고, 세 끼를 꼬박꼬박 먹으며, 규칙적인 운동으로 근육을 키워야 한다.
또 폭식증과 거식증 등 식이장애를 주의해야 한다. 식이장애 환자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 왜곡된 상을 가져 날씬한데도 뚱뚱하다는 착각에 빠져 토하거나 굶는다. 체질량지수(BMI) 18.5∼23, 체지방 20∼30%의 정상범위를 지켜야 하며, 자신의 몸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술자리에선 안주 조금만
술만 조심하면 성공-직장 여성
의사 입장에서 직장 여성은 꼬치꼬치 따져 묻고, 여기저기서 들은 것이 많으며, 부작용에 대해선 그냥 넘어가지 않는, 까다로운 환자다. 대신 성취욕구가 강하고 목표가 뚜렷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직장 여성의 다이어트 실패를 야기하는 대표적 장벽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술이 있는 회식자리. 술자리는 기름진 안주의 유혹이 있고, 다음날 허기져 많이 먹게 만들며, 종일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등 여러 모로 비만치료에 치명적이다.
■ 처방 사회생활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가능한 한 회식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체중을 조절하는 동안만이라도 주변에 금주를 공공연히 선언하도록 한다. 불가피하게 참석했다면, 야채나 밥으로 배를 채워 기름진 안주를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한다.
올빼미족이라도 낮엔 운동을
불규칙한 직업 유형
날씬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절박하면서도 생활이 불규칙한 직업군이 있다. 유흥업소 종사자는 비만 클리닉의 주요 고객 중 하나이며 이밖에 연예인, 야근을 일삼는 자유직도 있다. 생활이 불규칙하고 밤늦게 일하고 쉴 때는 잠만 자는 등 조건은 최악이다. 3개월 프로그램을 채우지 못하거나 얼마 지나지않아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선 돈을 잘 써 꼭 잡아야 하는 고객이다.
■ 처방 올빼미족의 경우 밤늦게 일하더라도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필요하다. 즉 늦잠을 자더라도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최소한 2끼는 챙겨먹으며, 여유있는 낮 시간에 운동을 다니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이 끝난 뒤 한잔 더 하는 습관은 가장 먼저 버려야 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비만클리닉 200% 활용법 운동 안하면 "백약무효"
큰 맘 먹고 비만 클리닉에 발을 들였다면 한 두번 갔다가 그만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감량에 성공하기 위한 비만 클리닉 200% 활용법을 알아보자.
'처음 먹던 그 약'은 없다
"선생님, 처음 먹던 그 약 다시 주세요." 다이어트가 길어지면 이렇게 말하는 환자가 있다. 첫 달에 비해 감량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약에 내성이 생긴다는 점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식욕을 억제하는 리덕틸이나 항우울제 등은 3∼6개월쯤 먹으면 흔히 효과가 떨어진다. 생존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본능을 유지하려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방어 기제다.
때문에 약은 어디까지나 식습관을 바꾸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여겨야 한다. 먹는 양을 조절하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약만 먹으면 저절로 살이 빠질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저절로 살 빼 주는 약은 없다.
3개월을 채워라
개인 차가 있지만 보통 3개월 정도는 기본이다. 한 달쯤 지나면 슬슬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고개를 든다. 당장 눈앞에 효과가 보이지도 않고, 의사의 '숙제검사'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 하지만 체중조절의 핵심은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것이고 습관을 바꾸는 데에는 3개월 정도 걸리므로 꾸준히 따라가는 게 좋다.
병원이 가장 싸다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한 직장여성 P(36)씨는 그동안 효소 절식 한달분에 39만5,000원, 방문판매 한약에 10만원, 각종 생식과 다이어트 음료 등에 숱한 돈을 썼다. 하지만 모두 먹을 때뿐 2주정도 먹고 나면 전보다 더 먹게 돼 2㎏쯤 뺐던 살이 금방 복구되곤 했다. 그나마 한달에 수십만원씩 한다는 체형관리실에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결국은 비만클리닉을 다니며 석달만에 7㎏을 감량했고 4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비만 클리닉을 오기 전 건강보조식품, 단식원, 체형관리실 등을 거친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 바로 요요현상을 겪고, 비용은 오히려 병원보다 몇 배나 비쌀 수 있다. 치료비가 아깝다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비효율적이며 실패하기 쉽다.
의사는 선생님이 아니다
부끄럽다고 해서 의사를 속이는 환자가 많다. 교정해야 할 생활습관(식사, 운동 등)을 지키지 않으면 의사에게 창피하거나 스스로 자존심이 상해 말을 못하는 것. 또는 병원 가는 전날 몰아서 굶거나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기대 만큼 체중이 빠지지 않으면 원인을 정확히 집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이 때 의사와 환자의 솔직한 관계가 중요하다. 의사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대책을 찾지 못하고 환자는 포기하기 쉽다.
한 병원을 다녀라
병원에 결정적인 불만은 없는데도 감량이 잘 안 되면 의사 얼굴 보기가 민망해 병원을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똑같은 이유로 실패를 반복하거나 약물을 과도하게 중복 처방받을 우려가 있다. 예컨대 미 식품의약국(FDA)이 3개월 단기처방만 가능토록 허가한 '푸링'이나, 이뇨제, 주사제로 쓰는 아미노필린 등은 과도한 양을 처방받으면 위험하다. 병원을 다시 찾더라도 어떤 약을 써왔고 무엇 때문에 감량에 실패했는지를 잘 아는 의사를 찾는 게 좋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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