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동 주공아파트 11단지 A부동산. 12년째 이 곳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최모씨는 아파트 재건축으로 올 가을쯤 집을 비워야 한다는 소식에 부동산을 찾았다. "가을쯤 되면 과천 안에서 전셋집 구하기는 힘들어집니다. 되도록 일찍 결정하고 옮기세요." 중개인의 말에 최씨는 하루 빨리 아직은 재건축이 본궤도에 오르지 않은 인근 단지에 전셋집을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과천지역에 전세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 적당한 집을 구할 수 있을 지 걱정이다.과천 인구 100명 중 35명 집 떠나야
관악산과 청계산 산자락의 넉넉한 품 안에 살포시 안겨있는 곳. 땅 대부분이 개발제한 구역으로 묶여 사람 손길이 닿은 곳은 불과 8%인 자연 그대로의 도시. 더구나 서울과 지척인데다 원조 '행정수도'라는 상징성까지 더해 과천은 각종 '살기 좋은 도시 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한다.
그런 과천에 말로만 무성하던 재건축이 먼 항해를 위해 돛을 올리고 있다. 향후 10∼15년 동안 지속될 주공아파트 12개 단지의 업그레이드작업이 본격화해 머지 않아 과천사람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그러나 과천 안에 이들이 머물 곳은 극히 일부. 결국 '살 곳 없어진' 입주자들이 이주 대책 마련에 절치부심하고 있는 가운데 '과천 말고 다른 곳은 싫다'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어서 전세대란마저 우려되고 있다.
과천의 아파트 거주자는 주공아파트 12개 단지(연립주택단지 포함)에 총 1만3,522가구. 시 전체 7만 인구의 80%에 해당한다. 이 중 올 해 안으로 이주가 예상되는 곳은 주공 3단지(3,110가구)와 11단지(650가구). 중앙동 주공11단지는 교통영향평가를 거쳐 이르면 3월중 시로부터 재건축 허가를 받을 예정이다. 11단지 재건축조합 측은 6∼7월께 주민들이 이주하고 2005년 초 착공, 2008년에는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과천시에 재건축심의를 접수한 별양동 주공 3단지의 경우 6월 중 사업계획승인을 받아 이르면 올 10월께 이주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2개 단지가 재건축에 돌입하면 과천시 인구의 35%는 살 곳을 옮겨야 한다. 3단지에는 15,33,44,54,63평형 3,635가구가 지어지고, 11단지에는 24,33,40평형 685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과천 떠나면 어디로 가나요'
문제는 과천시 안에는 이들이 옮겨 살 만한 곳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과천시 관계자는 "80년 초 주공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후 대규모 주택 단지가 조성되지 않았다"며 "문원동에 약 500세대 규모의 연립주택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부분은 서울이나 안양, 산본, 의왕 등 인근 도시로 옮겨야 한다. 3단지에 살고 있는 최미영(40·여)씨는 "뭐니뭐니 해도 아이 학교가 걱정"이라며 "주변에는 과천 만큼 좋은 학교가 별로 없어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부분이 세 들어 사는 형편이라 이번에 떠나면 재건축이 끝나더라도 뛰어 오를 집값에 '컴백 과천'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천 남기'에 바빠진 주민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살기 좋은 과천'에 남기 위한 주민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인근 2단지 상가 내 D부동산 권모씨는 "재건축이 늦은 2단지로 이사하려는 3단지 주민들의 문의전화가 부쩍 늘었다"며 "벌써부터 주변 단지로 이사 가는 주민들이 심심치 않게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3단지에 살고 있는 이숙희(39·여)씨는 "지난 주 가게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안양 비산동 아파트 단지에 다녀왔는데, 주변 상권이나 교통 여건이 여기 하고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해서든 과천에 남기 위해 요즘 가족들과 인근 단지로 옮기는 것을 얘기 중이다. 3단지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일부 주민들은 어차피 떠날 바에는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게 낫다면서 최근 입주를 시작한 안양 비산동 등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면서 "그러나 아직도 남아야 할 지 떠나야 할 지 갈팡질팡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계속될 재건축, 지속될 혼란스러움
3단지, 11단지의 뒤를 이어 2단지(1,680가구)와 6단지(1,262가구)도 각각 지난해 10월과 12월 재건축추진위승인를 받고 본격적으로 재건축에 뛰어들었다. 과천시는 한꺼번에 여러 단지가 재건축 공사에 들어갈 경우 전세대란은 물론 교통, 환경문제 등 큰 혼란이 예상됨에 따라 시기를 조정하고 있다. 원칙은 3단지와 11단지가 입주할 때 다른 단지가 재건축 공사에 들어가도록 한다는 것. 그러나 2단지, 6단지 추진위는 시의 이런 방침에 '지나친 강제'라며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평온했던 전원도시 과천이 벌써부터 새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산고를 겪고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지난 해 정부가 내놓은 '10·29 대책' 이후 큰 폭으로 내림세를 보여 온 과천 아파트들이 재건축이 가시화하면서 최근 들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최근 2주 동안 0.86%가 올라 평당 2,191만원에서 2,210만원으로 오른 것. 현재 서울과 수도권 지역 재건축 추진 지역 아파트 중 평당 2,000만원이 넘는 곳은 과천을 비롯해 서울 강남, 서초, 송파, 강동 등 5곳.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사업추진 속도가 빠른 주공 3단지와 11단지가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다. 주공 11단지의 경우 '10·29' 대책 직후인 지난 해 11월 7일 평당 매매가격이 1,933만원에 그쳤으나 호가를 기준으로 2,800만원(2월 6일 현재)까지 상승했다. 3단지도 15평이 평당 1,983만원에서 지난 달 2,300만원, 현재 2,367만원에 다다랐고 이는 6개월 전과 같은 가격이다. 2단지와 6단지 역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3단지 내 S공인 관계자는 최근 가격상승 원인에 대해 "재건축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고 이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아지기 때문"이라며 " '10·29' 대책 이후 쏟아져 나온 재건축 급매물이 거의 다 소화되고 있는 과정에서 호가가 상승한 것도 이유"라고 분석했다.
11단지 내 M부동산 관계자는 "현재까지 전세가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이사 가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가격은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일부 안양이나 의왕 등 인근 지역 전세가격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박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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