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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남자의 인생지도

입력
2004.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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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 쉬히 지음·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발행·1만3,000원

남성에게도 '폐경기'가 있다? 남성도 나이가 들면 육체적·성적·정신적·사회적으로 노쇠한다. 그러나 이제껏 여성의 폐경만이 관심거리였다. 저자 게일 쉬히는 남성의 폐경도 남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낮에는 삼손의 힘을 자랑하고 밤에는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이들도 40대가 되면 머리가 빠지고 섹스에 무심해지며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저자의 표현대로 '문명 사회는 남성 상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위축감에 시달리는 40세 전후의 남성을 위해 나침반과 지도를 제공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30년이나 더 남았으며 이것은 제2의 인생을 맞을 기회'라고 힘을 북돋운다. 아직 위기를 맞지 않은 이들에게는 선행 학습의 기회를, 위기를 맞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삶에 대한 적절한 태도를 처방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지도는 재테크만 빼면 아내와 가족과의 관계, 성적인 문제, 직장 문제 등 다방면에서 충실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40, 50, 60대를 거치며 맞닥뜨릴 수 있는 장애물과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지혜도 일러준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값싼 처세술에 있지 않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가부장적·권위주의적 시대의 남성상에 길들어져 있던 '가짜 자신'을 버리고 대화와 관계를 중심으로 '두번째 성인기'를 보낼 것이며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시대에 맞게 변신을 하겠다는 계약에 동의하는 것이다. '가짜 자신'이란 진정한 자기 자신이 아니라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보상하고 칭찬하는 자기 자신을 말한다. 저자는 중년이야말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두번째 성인기'라고 말한다.

혹시 예전의 남성상이 요구한 '거칠고 외로운 카우보이''덩치 큰 고릴라' '존 웨인 같은 사나이 기질'에 아직 현혹되고 있다면 이 책은 수다스러운 미국 아줌마의 잔소리 밖에는 안 될 것이다. 저자가 꼼꼼하게 파헤친 중년 남성의 약점을 읽다 보면 화가 날지도 모른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고 아내에게 의존하며 감정적으로 약해진다. 머리가 빠지는 것을 자신의 통제력 상실로 여기며 아내가 자신보다 많이 벌면 위축된다. 남성의 역할과 특권이 줄어드는 시기에 남성이 어떻게 고통 받는지를 저자는 소상하게 짚어낸다. 진단이 정확하니만큼 처방도 신뢰할만한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운동과 대화,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자각과 봉사, 관계 확대하기, 남자와 가깝게 지내는 법 배우기 등은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제안이지만 남성의 심리에 대한 저자의 통찰, 세심하면서도 따뜻한 시선, 풍부한 실제 사례 덕분에 귀 기울일만한 것이 된다. 다만 실제 사례로 나온 이들이 거의 백인 중산층 엘리트 남성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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