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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향기"가 "악취"로/영미문학 표절·오역 "위험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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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향기"가 "악취"로/영미문학 표절·오역 "위험수위"

입력
2004.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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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의 '영미 고전문학 번역 평가사업'은 그 동안 단편으로 지적된 표절이나 오역의 실태를 체계적으로 검증한 국내 첫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달 말 완료된 평가 보고서는 국내 번역 수준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전망이다.보고서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대중성이 높은 영미문학 작품이 중복 출판되면서 표절이 거의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는 점이다. 남의 번역을 그대로 베끼거나 단어·표현만 바꾼 책들이 검토 대상인 전체 36편, 573종 번역서의 절반을 넘는 54%를 차지했다. 번역의 수준을 높이기 전에 남의 번역 도둑질하는 습관부터 고쳐야 할 판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는 소설(30편·449종)의 표절 비율이 57%로 비소설 장르인 희곡(4편·108종)과 시(2종·16편)의 43%보다 높은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게다가 일부 작품의 경우 지금 사서 읽을 수 있는 1990년 이후 출간 번역서에서 표절이 더 늘어나는 현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만과 편견'의 경우 표절본 14종 가운데 무려 12종이 90년대 이후 출간됐다. 2000년대 들어 출간된 것만 6종에 이른다. '제인 에어' '테스' '주홍글자' 등 표절본의 수가 수십 종인 경우도 절반 이상이 90년 이후 나온 책으로 확인됐다. '맥베스'의 경우 표절본 14종 가운데 8종이 90년대 이후 출간됐으며 '햄릿'은 표절본 13종 중 6종이 95년 이후 발행됐다.

독자들이 믿고 사서 읽을만한 번역서가 극히 적다는 점도 큰 문제다. 평가단이 표절본을 제외한 번역서를 추천할만한 번역본 신뢰성이 높지 않은 번역본 신뢰하기 어려운 번역본으로 3등급으로 나눈 결과, 추천할만한 번역본은 전체의 11%(소설 6%)에 불과했다. 대표적인 것이 잘못 번역한 경우, 원문을 누락하는 등 충실하지 않게 번역한 경우, 옮겨 놓은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 등이다.

문제는 과거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번역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90년대 이후 새 번역 중 '더블린 사람들' '테스' '포우 단편선' '위대한 개츠비' 등에서 번역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경우도 있지만, 작품에 따라 초기에 나온 번역이 이후 다른 어떤 번역보다 나은 최고 점수를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햄릿' 번역은 54년 최재서의 번역이 최고인 것으로 평가됐다. '제인 에어'는 70년 유종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76년 이상옥, '노인과 바다'는 75년 황동규의 번역을 넘어서는 번역이 없었다.

평가단은 부실 번역이 왜곡된 정보를 낳고 결국 학문적·문화적 부실 공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학계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번역자에 대한 지원, 번역에 대한 논문·저서 집필과 대등한 수준의 평가 등 사회적인 개선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가의 대상 작품들은 영미문학 대표작 가운데 그간 국내에서 친숙하게 읽어온 소설과 희곡·시를 위주로 했다. 평가단이 도서관, 서점 등의 소장 현황을 조사하고 출판연감이나 기존의 번역 작품 서지 연구 등을 참고해 확인한 전체 번역서 숫자는 1,808종. 이중 해방 이후로 시기를 한정하고 완역이 아닌 부분 번역, 축약, 어린이용 판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573종이었다.

평가단은 번역이 얼마나 원문에 충실한가(충실성), 읽는데 문제는 없는가(가독성)를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고 작품의 이해도 등 기타 요소를 보완했다고 밝혔다. 평가단은 서강목 한신대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50종 안팎의 다른 영미문학 작품에 대한 2차 평가에 착수했다.

이번 1차 작업 대상 중 주요 작품에 대한 자세한 평가 결과는 16일자부터 매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오역사례

1975년 번역, 출간된 '테스' 가운데 '그는 테스가 무슨 말을 해도 태연한 척하는 것이 무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대목이 있다. '그는 냉담한 것보다는 무슨 말이든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았다'(He knew that anything was better than frigidity)는 문장을 완전히 반대로 옮긴 것이다.

98년 번역된 '햄릿'은 '아, 하느님, 하느님. 세상 일이 내겐 권태롭고 진부하고 무미건조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보일 뿐이구나. 더럽다, 더러워'로 옮겨야 할 것을 '아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 의미도 없이 귀찮을 뿐이로구나!'라고 마음대로 줄여 번역했다. 완역본이라고 명기한 많은 번역본에서 이런 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의 88년 번역본은 '당신의 기분을 해칠 만한 감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에 놓인 것을 그저 안 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는 문장이 있다. 무슨 말인지 알 도리가 없다. '제 입장에서 설명을 드리다 보면 불가피하게 당신이 불쾌해 하실 감정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의 부적절한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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