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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30>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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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30>바그너

입력
2004.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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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2월13일 독일 작곡가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가 70세로 작고했다. 바그너는 19세기 유럽 음악사를 대표할 만한 인물 가운데 하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방황하는 네덜란드 사람' '로엔그린' '탄호이저' '니벨룽의 가락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같은 악극이나 오페라는 이 작품들을 실제로 감상하지 못한 사람들의 귀에도 익숙하다. 바그너 만년인 1876년 '니벨룽의 가락지'가 바이에른주 바이로이트 축제국장에서 초연되면서 시작된 바이로이트 음악제는 바그너 음악의 잔치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로누아의 왕자 트리스탄과 아일랜드의 왕녀 이졸데(이죄)의 비련을 담은 중세 켈트족 연애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본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탄생했지만, 바그너의 악극이 워낙 유명해진 덕분에 독일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다.바그너의 예술이 섬세하고 단정했던 것 이상으로 그의 삶은 어수선했다. 1849년 성장지 드레스덴에서 일어난 혁명에 연루되며 시작된 도피 생활은 1864년까지 이어졌고, 그 뒤에도 음악계 안팎에 적이 많아 거처를 옮기는 일이 잦았다. 배우 미나 플라너와의 첫 결혼은 아내가 죽을 때까지 격렬한 불화 속에서 껍데기만 유지됐고, 분방한 연애 생활 끝에 이뤄진 친구 프란츠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의 결혼도 리스트의 반대를 무릅써야 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가락지'를 포함한 여러 작품의 대본을 직접 쓴 데서도 드러나듯, 바그너는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했다. 음악가이자 문필가로서 바그너는 음악론을 여럿 발표했는데, 그의 생각에 따르면 바람직한 전체예술은 여성으로서의 음악과 남성으로서의 시가 결합해 이뤄지고, 일부 계층의 오락을 넘어서 한 국민 전체의 감성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한 시대의 성격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적인 것을 상징의 차원에서 표현하는 신화여야 한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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