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북핵 해결의 긍정적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연초부터 2004년을 '전환적 의의가 있는 해'로 만들자는 주장과 함께 "적대국들과의 대결에 종지부를 찍을… 최고영도자의 강한 의지"(조선신보, 1· 14)를 언급하는 등 핵 문제의 조기해결 의지를 강하게 시사했다.그리고 13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2차 6자회담을 25일 개최하기로 발표함으로써 북핵 문제는 6자회담에 넘기고, 장관급회담에서는 남북교류협력과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은 최근 장관급회담에 대해 "평화를 지키고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는데 중요한 계기로 되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최근 북한이 '전환적'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핵 문제 등으로 체제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을 반전시키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정책전환의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장관급회담 기간인 지난 6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첫단계 행동조치로 제시한 핵 동결은 단순한 현상유지가 아니라 핵포기 과정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여 북한의 대화전략이 종전보다 더 적극성을 띠고 있음을 밝혔다.
미국에서도 긍정적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3일 미 국무부는 2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제안한 핵 동결 문제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바우처 대변인은 북한의 핵동결 제안이 "긍정적 조치이며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8일 부시 미 대통령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가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이고,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한 재정적 보상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핵 폐기를 위한 과정으로서의 핵 동결과 안전보장 제공을 위한 논의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서 훌륭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한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부시 대통령은 행정부 내 강·온파의 갈등을 조율하지 않고 북한의 선 핵 포기만을 주장하면서 시간을 끌어왔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의 수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부시 대통령이 최근들어 재선전략 차원에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외교적 성과로 삼으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라는 숙제를 부여 받고 출범한 참여정부는 지난 한해 '평화번영정책'을 가속화할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가 마무리되기 전에는 획기적인 일은 만들기는 어렵고 그것이 현실"이라고 하면서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남북관계는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대북정책 입장정리는 지난해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마련한 '대화와 압력의 병행원칙'에 입각한 북핵 해법의 틀 속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우리 정부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의 정책변화 움직임이 구체화됨으로써 2차 6자회담부터는 북핵 문제 해결의 실질적 프로세스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핵 해법이 구체화하면 남북간 화해협력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계기로 동북아 역내 국가 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협력체를 구축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차기 6자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회담 전에 북-미, 그리고 관련국가간 물밑협상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2차회담부터는 실질적인 프로세스가 열려야 하기 때문에 사전 정지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우리 정부를 비롯해서 관련국가들의 외교적 노력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고 유 환 동국대 교수· 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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