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단 하나의 자유무역협정(FTA)도 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가운데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인 미국이 통상정책의 중심을 FTA로 '올 인(All In)'시키고 있다. 미국의 움직임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간 무역협상에 대한 불신과 농산물 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미국과의 FTA 체결을 기피하는 한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12일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월말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 중남미 5개국과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을 체결하고, 이달 8일에는 호주와 FTA 협상을 타결시켰다.
또 예멘, 쿠웨이트, 바레인 등 중동지역 국가와 FTA 협상을 시작하거나 FTA 협상 전단계인 '무역·투자 기본협정(TIFA)'을 채택하는 등 올들어 세계 주요국과 일대일 무역협정을 맺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도 통상정책을 FTA 위주로 재편하기 위해 의회에 관련 예산을 최소 20%이상 증액해 줄 것을 요청했다. 로버트 죌릭 USTR 대표는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미국 통상정책에서 FTA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관련 예산과 인원의 대폭적인 증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장기적인 FTA 전략은 미주(美州) 대륙은 물론이고 중동과 동남아시아, 남아프리카 등 전세계에 FTA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WTO는 최근 펴낸 '미국의 통상전략' 보고서에서 미국의 FTA 추진이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고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CATFA 등을 통해 미주 대륙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체제로 끌어들였다. 또 지난해 10월 태국과 FTA 협상을 시작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동남아 제국과의 FTA 체결을 모색하고 있으며, 중동(바레인·쿠웨이트·예멘 등)과 남아프리카 5개 국가와 집단적으로 FTA를 체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한국, 일본 등을 제외하면 미국이 FTA를 체결했거나 협상을 진행 중인 국가는 전체 교역상대국의 69%, 교역량은 73%에 달한다. WTO 체제와 상관없이 미국은 이미 자신들만의 무역환경을 개척한 것이다.
미국이 FTA에 주력하는 이유는 다자간 무역체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죌릭 대표는 "148개 모든 회원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WTO 체제가 무역자유화에 방해가 된다면 미국은 특정 지역이나 양자간 무역 자유화에 힘쓸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심각한 것은 미국이 한국을 미국과의 FTA 체결을 거부하는 나라로 분류, 견제에 나섰다는 점이다. USTR은 지난해 말 이후 주요 공식문서에서 "한국은 EU, 일본과 함께 농업개방을 기피하기 위해 FTA를 거부하는 3개 국가"라고 밝히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EU는 이미 35건의 FTA를 체결했고 일본도 싱가포르와 FTA를 맺어 FTA 흐름에 소외되지 않고 있다"며 "한국만이 미국의 견제를 받게 됐다"고 우려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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