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석' 문재인 민정수석이 청와대를 떠난다. 그가 12일 밝힌 사퇴 이유는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 수석의 사임은 대통령 친인척·측근에 대한 관리 책임론, 열린우리당에서 제기된 '악처(惡妻)론' 등을 한번에 책임을 지는 모양새가 됐다.문 수석의 퇴진은 제1기 청와대 비서실이 1년도 채 안 되는 시점에서 임무를 다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실상 청와대의 마지막 파워그룹인 이른바 '부산파'도 힘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양대 축 가운데 하나였던 386 측근들도 이미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의 사퇴로 세력이 약화된 상태다. 핵심 측근들이 떠난 자리를 관료출신 및 새로운 측근들이 메워가고 있지만 아직은 공백이 크다. 그래서 2기 청와대의 구심력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부산파의 또 다른 핵심인 이호철 민정비서관 등 다른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의 거취도 주목되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전원 문 수석과 동반사퇴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등 매우 뒤숭숭한 분위기다. 언제나 논란의 표적이 됐지만, 민정수석실은 부산파의 거점일 뿐 아니라 청와대의 각종 현안을 도맡아 처리하는 해결사 역할을 수행해왔다. 문 수석에게 이런 과부하가 걸린 것은 청와대의 다른 수석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 수석도 회견에서 "총선까지 치르고 사퇴하려 했지만 많이 지쳤다"며 "노 대통령이 힘든 시기에 떠나게 돼 가슴은 무겁다"고 말했다. 문 수석은 그 동안 격무로 이가 한꺼번에 5개가 빠지기도 했고, 심한 고혈압 증세에 시달렸으며 최근에는 간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 수석은 민경찬씨 사건 등의 부실 처리가 문제가 됐다는 추측에 대해서는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겠지만 잘못 처리한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친인척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사퇴 요인 중 하나로 보여진다. 문 수석은 지난해 8월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사실이 드러난 뒤 "내가 문책 대상이라 사퇴를 하려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문 수석은 "이번 총선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보지만 개인 인생관도 존중되어야 한다"며 불출마 의사를 확인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서는 "부산에서 열풍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문 수석이 반드시 출마해야 하는 만큼 삼고초려도 불사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후임으로도 PK출신인 박정규 변호사를 내정함으로써 호남출신인 정찬용 인사수석과 균형을 맞췄다.
/고주희기자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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