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들려오는 한류(韓流) 열풍 소식은 우리를 들뜨게 한다. 1990년대 말 드라마 수출로 일기 시작한 한류는 이제 중국, 대만 등 중화권은 물론 동남아의 비중화권 국가와 일본에서도 거세다. 대상도 탤런트 영화배우 가수 등 연예인에서 김치 고추장 라면 등 한국 식품, 휴대폰 가전제품 패션 등의 한국 공산품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을 직접 구경하기 위해 한국 여행을 하고 한국어까지 익히는 합한족(哈韓族)까지 등장할 정도니 열풍의 강도를 짐작케 한다.한류(韓流) 열풍을 즐기는 사이 어느새 우리나라는 거센, 또 다른 한류(漢流)에 에워싸여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중국 상품 천지다. 중국산 농수산물은 전국의 5일장까지 파고들어 토종 행세를 한 지 오래다. 공산품도 품질에 비해 가격이 좀 싸다 싶어 레이블을 까보면 십중팔구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다. 한국이 확고한 경쟁력을 지녔다고 믿는 TV 세탁기 공기청정기 등 가전시장까지 공략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사이 중국산이 우리 안마당 깊숙이 파고든 것이다.
우리 기업의 중국 진출 자문에 응해 온 한국 변호사들은 최근 중국 기업으로부터 이색 주문을 받고 자주 놀란다고 한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인수할 만한 기술력 있는 기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이다. 만만하게 보아온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덤비니 놀랄 수밖에. 그러나 놀랄 단계는 지났다. 기술은 있는데 경영난을 겪고 있는 싹수 있는 기업에 대한 기업 사냥은 벌써 시작됐다. 중국 BOE그룹의 하이닉스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부문 인수나 란싱그룹의 쌍용자동차 인수 추진은 하나의 사례일 뿐 알게 모르게 많은 기업들이 중국 기업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 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라면 어디에 있든 중국 기업의 인수대상이 될 수 있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한류(漢流)는 광풍에 가깝다. '세계의 공장' '세계 경제의 블랙홀' 등으로 지칭되는 중국이 경제개발에 급피치를 올리면서 각종 원자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직접 세계 곳곳에서 자원 개발 사업도 벌이고 있다.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에너지 자원 독점에 대비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이 성공적으로 국제 자원을 확보할 경우 그 입김이 대단할 것은 자명하다. 중국이 당당한 메이저가 되어 국제시장을 지배할 날이 머지 않았다. 중국의 원자재 싹쓸이로 일부 기업의 가동 중단 사태가 나타나고 각종 물가가 오르는 등 이미 우리 경제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가 중국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올해 우리 경제의 모습으로 굳어가고 있다. 중국 특수 때문에 특정 분야는 호황을 맞겠지만 중소기업과 내수산업은 중국의 경쟁력에 밀려 산업공동화가 가속화하고 실업사태는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얘기다.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는 것도 중국 때문이지만 우리 경제가 벽에 부딪혀 기를 못 펴는 것도 바로 중국에서 발원한 한류(漢流) 때문이다.
잘 나가는 수출도 언제 브레이크가 걸릴지 모른다.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조류독감, 황사만 가공스러운 게 아니다. 수(隨) 당(唐) 등 역대 중국의 실패한 한반도 공략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자적 경쟁력 없이는 전방위로 몰아치는 한류(漢流)에 또 다른 한류(韓流)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도 못하면서 어떻게 한류(漢流)에 대응할지, 블록경제로 재편되는 국제무대에서 어떻게 버텨낼지 막막하기만 하다.
방 민 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방민준 논설위원이 오늘부터 메아리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방 위원은 경제부장 등을 지내며 쌓은 폭 넓은 경험과 시야로 국내외 문제를 짚어갈 것입니다.
방 민 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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