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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오리고기 먹읍시다/"치킨점 창업후 퇴직금 모두 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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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오리고기 먹읍시다/"치킨점 창업후 퇴직금 모두 날려"

입력
2004.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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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젊은 나이에 꿈을 접고 삶을 포기했을까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겠어요."충남 천안시 두정동에서 치킨체인점을 운영하는 김옥정(36·여)씨는 11일 해질녘 가게문을 열었지만 한숨이 앞을 가린다. 개발붐을 탄 천안시내에서도 요지에 자리잡아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던 것이 최근의 일. 그런 김씨에게 조류독감은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다.

김씨는 강원도 치킨점 젊은이의 자살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폐업은 안된다"는 생각에 조리대 앞에 섰다. 그러나 하루에 2,3마리 팔기 조차 버겁다. 월급 줄 돈이 없어 배달 종업원을 그만두게 한 지도 이미 오래전. 함께 일한 남편은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섰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아 김씨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애들 학비걱정에 잠이 안와요'

양계장들의 형편은 더욱 비참하다. 천안시 풍세면 신동호(41)씨는 양계사업에 뛰어 들었다가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지난달 인근 농장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한 뒤 삶의 전부인 산란계 2만5,000여마리를 도살 처분했고, 그후로는 문 밖 출입도 뜻대로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밖에 돌아다니면 만에 하나 조류독감을 이웃에 옮기지 않을 까 걱정 돼 다른 일거리를 찾지도 못해요." 신씨는 "아이들 학비 걱정 때문에 앞이 캄캄해요"라고 탄식했다.

조류독감 발생 이후 닭과 오리를 기피하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농가와 업체들이 위기 차원을 넘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고 있다. 급기야는 젊은이가 자살했고, 화병을 얻어 생사의 기로에 놓인 농민들까지 속출하고 있다.

충북 음성군 삼성면 배홍례(56·여)씨는 닭 8,000마리를 땅에 묻은 데 이어 그 충격으로 남편(62)마저 잃을 위기에 놓였다. 달걀 납품으로 융자금 이자와 생계를 꾸리다 조류독감 충격으로 남편이 쓰러진 것. 남편은 간경화가 악화돼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돈이 없어 치료는 엄두도 못 낸다. 배씨는 "양계장을 짓느라 꾸어온 농협 빚 8,000만원을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막막하다"며 "곧 나온다던 도살 처분 보상금은 여지껏 구경도 못했다"고 울먹였다.

'닭 팔 곳이 없어요. 땅에 묻어야죠'

'전기요금 낼 돈이 없어' 문을 닫는 식당도 속출하고 있다. 퇴직금으로 치킨점이나 삼계탕을 개업했다가 '깡통'을 찬 이들이 수두룩하다. 경남 창원시 용호동에서 삼계탕집을 운영하는 김모(36)씨는 "더 버틸 여력도 없어 문을 닫을까 고민 중"이라며 "거리에 나앉을 상상을 하다 가슴만 시커멓게 타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조류독감의 악령은 농가, 식당 뿐 아니라 닭 유통업계 전체로 번져 닭고기 산업 기반 자체를 와해시키고 있다. 국내 닭고기 시장 점유율 26%로 국내 최대 닭고기 유통업체인 전북 익산시의 (주)하림. 매출 규모가 1일 평균 30만마리에서 조류독감 직격탄을 맞고 10만마리로 70% 가까이 급감했다. 닭은 커가는 데 팔 곳은 없자 냉동창고에 쌓아놓고 있지만 창고도 모두 차 도살처분한 닭을 언 땅속에 묻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을 맞고 있다.

(주)하림 오관석(50) 전무는 "미국, 브라질 등 육계 강국이 국내 시장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산업기반이 이대로 무너진다면 정말 회복하기 어려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정부의 솔선과 함께 소비자들의 열린 자세를 갈망할 뿐"이라고 말했다.

피해규모 이미 1조 육박

한국계육협회 등 5개 관련 단체가 조사한 피해 규모는 외식업체 4,728억원, 양계농가 1,518억 등 모두 8,147억원. 막연한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피해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계육협회 김한웅 부장은 "소비 위축이 6개월만 더 지속되면 양계 관련산업은 완전 초토화돼 회생불능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최정복기자 cjb@hk.co.kr

천안=이준호기자 junhol@hk.co.kr

익산=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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