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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29>2·12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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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29>2·12 총선

입력
2004.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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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월12일 제12대 총선이 치러졌다. 미국으로 추방돼 있던 김대중은 그보다 나흘 전 재수감할 수도 있다는 군사 정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강행해 연금되었다. 제5공화국의 두 번째 총선이었던 이 선거의 결과를 얼추라도 예측한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라 집권 민정당의 압승은 당연시되었고, 그보다 4년 전 신군부의 조종으로 만들어진 사실상의 위성 정당 민한당이 제1야당 자리를 지키리라는 것도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한국 유권자들은 유난히 추웠던 그 날 민주주의의 작은 씨앗을 심었다.제11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276명(지역구 184, 전국구 92)의 의원을 뽑은 이 선거에서 민정당은 유권자 35.2%의 지지를 얻었다. 선거법의 마술을 통해 민정당은 과반 148석(지역구 87, 전국구 61)을 차지했지만, 지역구에서는 과반 의석에 이르지 못해 사실상의 패배를 맛보았다. 철권 통치의 광포함에 더해 특히 방송 매체가 노골적으로 친민정당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민정당의 실질적 패배는 한결 또렷해보였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민한당의 패퇴였다. 민한당은 득표율 19.7%로 고작 35석을 얻어 11대에 견주어 무려 47석을 잃었다.

제11대 국회에서 민한당이 형식적으로 차지하고 있던 제1야당 자리를 새로 움켜쥔 것은 창당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신한민주당이었다. 김영삼·김대중이 이끈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기반으로 삼은 신한민주당은 이 선거에서 29.3%의 득표율로 67석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이내 두 김씨의 흡인력을 통해 민한당 의원 대부분을 데려옴으로써 민한당을 사실상 공중분해시켰다. 2·12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이 됨으로써, 1987년 6월항쟁에서 절정에 다다를 대통령 직선제 개헌운동이 시동을 걸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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