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달리기다. 그렇다고 마라톤을 하는 것은 아니고 집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열 바퀴 정도 뛰는 것이다. 나중에 마라톤에 도전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몸만 푸는 정도다.운동장을 뛰다 보면 추억에 젖기도 한다. 예전에는 커보였던 운동장이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학교 건물에 붙어있는 각종 표어다. 내용은 전혀 기억 나지 않지만 내가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다닐 때도 곳곳에 교훈 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교실 안에도 급훈이라는 것이 있었고, 가훈을 적어내는 숙제도 있었다. 이것은 누가 뭐래도 군사문화의 잔재다.
내가 요즘 이용하고 있는 초등학교 건물에는 정면에 '큰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즐거운 학교'라는 표어가 있고 양 옆으로 '성실한 어린이' '친절한 어린이'라는 글씨가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다.
건물 뒷면에는 '새 천년을 선도하는 희망찬 학교'라는 표지가 보너스로 붙어있다 (이건 아무래도 정치냄새가 난다). 또한 요즘에는 초등학교에도 네온사인이 도입되어 '교훈 : 질서, 성실, 창조'라는 번쩍 번쩍거린다.
과연 학생들이 학교에 들어서면서 '그래, 나는 새 천년을 선도하는 희망찬 학생이 되야지'라거나 혹은 '성실하고 친절한 어린이가 되고 말거야'라고 다짐을 할까?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보긴 하겠지만 이내 무슨 글자 비슷한 것이 붙어있구나 라고 무시해 버리지 않을까?
정작 문제는 표어자체보다는 그 내용이다. 아마도 표어는 교감이나 교장선생님같이 소위 학교의 윗 분들이 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말의 단순한 나열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결과 친절이니 성실이니 꿈이니 희망이니 하는 판에 박힌 말들이 넘실댄다.
이왕 표어를 쓸 거면 평생 기억에 남을 감동적인 문구를 쓰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좋은 추억은 없지만 '미래의 창조적인 일꾼이 되자'는 교훈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일꾼이라는 말이 주었던 이미지가 나는 아직도 좋다.
이 기회에 전국 학교를 대상으로 어떤 교훈을 쓰고 있는지 조사해 보면 어떨까? 더 나아가 학생들을 상대로 교훈이나 표어를 공모한다면? 아마도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속출할 것이다. '즐겁게 뛰노는 학교' '놀다 죽자' '재미가 공부다' '공부가 밥 먹여주냐' '공부는 쉬엄쉬엄, 놀기는 죽을 각오로' 등등.
이런 표어들로 알록달록하게 물들어 있는 학교도 괜찮지 않을까? 오히려 더 학교 다닐 맛이 날 지도 모른다.
/카이지 (http://blog.hankooki.com/cjh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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