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낮 12시30분 대구지하철 1호선 대구역 앞. 지난해 2월18일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전동차에서 한 학원강사의 디지털카메라에 찍혔던 안세훈(20·대구 동구 검사동)씨가 같은 앵글 속에 있었던 김주연(23·여·동구 방촌동)씨의 팔을 잡아끌고 있었다. "누나, 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면 공포심부터 없애야 해"라는 안씨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지하철에 오른 김씨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김씨는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참사현장이었던 중앙로역에는 내리지 못하고 지나쳤다. 아직도 1년전 악몽이 생생한 김씨는 반월당역에 하차하면서 안씨의 손을 꽉 잡으며 '해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안씨와 김씨는 대구지하철 참사 때 중앙로역에 정차한 1080호 전동차 1호 객차에서 우연히 함께 사진에 찍혔던 인연으로 1년째 오누이 같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참사 직후 영남대의료원에서 첫인사를 나눴던 둘은 같은 병동에서 함께 치료를 받으면서 든든한 동반자가 됐다. 한달에도 서너번씩 2㎞정도 떨어진 서로의 집을 찾아 참사 당시의 아픔을 달랬고 지난달말에는 3일간 경주에서 열린 심리치료캠프에도 동행했다.
진정제와 수면제, 신경안정제 등 알약 20여개를 매일 복용하는 안씨가 사고 후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은 지하철 탑승. 지난해 8월 지하철을 탔지만 참사의 악몽이 떠올라 구토까지 하며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지하철의 '지'자만 들어도 몸서리치던 안씨는 조금씩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다. 지난 연말부터 나가기 시작한 미용학원에 가고 올 때는 1호 객차만 고집한다. 1호차 탑승 덕분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중앙로역은 보기조차 싫어 절대로 이용하지 않는다. 안씨는 "자주 가슴이 터질 듯 숨이 막혀 목욕탕에 가거나 커피를 마시지도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도 사고 후부터 지금까지 매일 수면제에 의존, 잠을 청하고 있다. 온몸이 떨리는 증세도 계속되고 있다. 대구한의대 졸업식을 3일 앞두고 사고를 당했던 그는 "1년을 꼬박 병원에서 씨름한 탓인지 참사가 엊그제 일 같다"며 "9급공무원 시험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진 속의 인물 6명 중 안모(55)씨는 숨졌고, 김소영(29·여) 안승민(34) 이현경(21·여)씨 등 3명도 목·기관지 통증과 불면증 등을 호소하는 등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5명 모두 혹독한 사고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글·사진 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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