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 대한 여론의 뭇매가 쏟아진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이라크 파병 동의안 등 중대한 국정현안 처리를 무산시키면서 비리혐의로 구속된 동료의원의 석방 동의안은 약삭빠르게 통과시켰으니 비난을 면키 어렵다. "다 갈아치워라"는 분노의 목소리 앞에 의원님들이 난감하게 됐다. 검찰의 정치자금 수사로 의원님들의 권위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는데, 시민단체는 빨간 카드를 내밀며 낙선운동을 펼치고 있다. 경선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동료를 보며 의원들은 사면초가의 기분을 느낄 것이다.■ 무역으로 일어서고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그런 식으로 내팽개친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의원님들만 나무라기엔 허전한 구석이 있다. 농촌 정서를 생각하면 그들에게 FTA는 '뜨거운 감자'다. 국회의사당 코앞에서 농민단체가 전투적 반대데모를 벌이는 상황에서 총선을 앞둔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용기를 요구하는 것도 가혹해 보인다. 입장을 바꿔 한·일 FTA협정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올라왔다면 어떨까. 자동차 노동자들의 데모와 그 정치적 압력에 직면한 도시 출신 의원님 또한 똑같은 방법으로 반대하고 나설지 모른다.
■ 정치는 지역에서 시작된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지역에서 뽑힌 대표이다.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지역구 유권자의 이해(利害)와 정서의 노예가 될 속성을 갖는다. 그런데 근래 우리의 국정 이슈는 옳고 그름의 차원을 벗어나서 특정 지역구에 이익이냐 손해냐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국민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적 이익이 되는 일도 특정 지역주민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국익과 선거구의 이익은 이렇게 꼭 일치하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은 바로 이런 이슈다. 칠레와의 FTA협정은 준비하지 못한 농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일본과의 협정은 자동차회사와 그 노동자의 이익에 반할지 모르며, 미국과의 투자협정은 영화인들을 데모대로 만든다.
■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이 조약이 국가의 이익이 되도록 추진해나가는 주체는 정부다. 국회가 제대로 처리해 줘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국회로 비준안을 넘기고 할 일 다했다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보도에 의하면 청와대와 소위 여당을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은 비준안 처리를 위해 열심히 조율하고 뛴 흔적이 없다고 한다. 국회에 동의를 회부한 중요한 국정현안은 대통령의 대 국회 로비의 최우선 순위가 아닐까.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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