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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백성희·후배 김금지와의 만남/"60년 연극인생 아직도 싫증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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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백성희·후배 김금지와의 만남/"60년 연극인생 아직도 싫증 몰라"

입력
2004.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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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생 60년. 배우 백성희(79)씨는 한국 현대연극사이자 국립극단의 살아있는 역사다. 1944년 '봉선화'로 시작한 배우의 길, 1950년 국립극장의 전신인 신협에서 출발한 국립극단 생활은 연극계에서 신화가 됐다. 그녀가 이 긴 역사를 돌아보는 연극 '길'(가제·이윤택 극본, 김혜련 연출)을 준비해 4월 14일부터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그녀에게 둘도 없는 후배가 있다. 1959년 국립극장 부설 연기인양성소 1기생으로 백성희씨와 만난 이후 숱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김금지(62)씨. 김씨는 선배가 60년의 연기인생을 돌아본다는 소리를 듣고 한 달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선배의 지나온 60년에 대해 새삼스럽게 이것저것 물었다. "어쩌면 하나도 안 변하시냐"고 말문을 열자 백성희씨는 "쭈글쭈글 늙는 소리가 들려"라면서 "못 만나도 가족 같고 각별한 게 김금지"라는 말로 애정을 표했다.

김금지 배우 인생 60년에 이른 소회가 어떠세요?

백성희 연기에 몰두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네. 꽤 오래 했다는 생각은 드는데. '길'은 내가 해온 작품 중에서 하이라이트만 엮은 자전적 연극이야. 이윤택씨가 있는 정성 다 해서 만들어 줬지.

김금지 어쩜 다리도 곧고 허리도 이렇게 꼿꼿할 수 있어요? 20대 때부터 해온 체조 말고 건강 비결이 따로 있으세요.

백성희 밤낮 연극 하면 그 이상 육체 노동이 어디 있어? 연극이 몸을 유연하게 하지. 배우는 순수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잖아.

김금지 맞아요. 배우가 치매 걸렸다는 얘기는 없잖아요. 그리고 선생님은 모든 걸 물 흐르듯이 받아들이시니까 건강하시죠. 선생님 대표작이 참 많은데 대표작을 꼽는다면.

백성희 김동리의 '무녀도'의 모화, 천승세의 '만선'의 구포댁…. 아니, 우리가 같이 한 걸 꼽으면 되겠네. 차범석 선생의 '산불' 초연 때 내가 양씨 역을, 금지가 귀덕이 역을 해서 히트했지? 초연 때 금지의 연기는 전무후무였어.

김금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서울 명동 국립극장 문이 부서질 정도였잖아요?

백성희 금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등 내가 했던 역은 다 했고, 게다가 나보다 잘 했으니 정말 내 후계자야. 금지는 충실한 현모양처 노릇도 함께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지.

김금지 배우양성소에 들어와서 언제 선생님처럼 될까, 나는 언제 저 자리에 갈 건가를 생각했어요.

백성희 여자가 연극을 한다는 게 예전엔 정말 어려웠어. 내가 가풍이 고풍스런 집안에서 맏딸로 자랐거든. 연극을 하고 싶어 끈질기게 아버지와 혈투를 했어. 할머니가 거들어 주셔서 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는 "연극만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받으신 후에야 허락을 하셨지. 난 후회 없어. 내가 제일 행복해. 누구의 어머니도 아내도 아니고 내 삶을 살잖아.

김금지 배우가 아닌 여자, 어머니, 아내 백성희의 삶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백성희 눈만 뜨면 무대였거든. 집안에서 보낸 시간은 무대의 5분의 1밖에 안돼. 무대에서는 주역이었지만 사생활에선 단역이었지. 남편(소설가 나도향의 동생 나조화씨)과 아들, 며느리의 이해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어.

김금지 요즘도 공연이나 연습 때 술을 마시면서 뒤풀이를 해도 까딱 없으시다면서요?

백성희 술 잘 먹는다는 얘기? 아직 건강이 버텨주니 부모님이 고맙지. 배우는 건강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어.

김금지 60년 동안 선생님을 지탱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요?

백성희 되게 심각한 얘기네. 철학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닌데, 하다 보니 인생을 배워. 작품마다 우주만물을 느끼느라 싫증을 못 느끼고 항상 다른 삶을 살잖아. 힘들 땐 아버지가 떠올라.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연극만 열심히 하겠다는 맹세를 했으니까.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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