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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FTA, 선택 아닌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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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FTA, 선택 아닌 필수

입력
2004.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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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도한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가 또 다시 무산됐다.그 동안 언론과 방송을 통해 수많은 전문가들과 업계가 협정 발효 필요성을 역설했고 심지어 농업 부문 전공 교수와 일부 농민단체 지도자들마저 그 필요성에 수긍했는데도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의 완강한 반대와 각 당 지도부의 소극적인 대응, 그리고 많은 의원들의 소신 없는 처신으로 표결이 다시 무산된 것이다.

9일의 표결 무산 소식으로 칠레에서 한국 상품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이미지가 훼손될 것이다. 또 전 세계에 우리나라 대외 통상 정책 수행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켜 대외신인도 하락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번 표결 무산은 무디스사의 신용평가를 위한 실사를 코앞에 두고 일어났다. 외환 위기 직전에 있었던 금융개혁 법안, 노동법 개정안이 좌절된 이후 일어난 우리나라 대외신인도 하락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국가경제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심정이다.

무역에 의존해 살아가는 우리 경제 입장에서 FTA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무수히 논의되었기 때문에 또 다시 부연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의원들이 마치 한·칠레 FTA가 발효되면 국내 농업이 붕괴될 것처럼 이야기하며, FTA 발효를 세계무역기구(WTO) 농업 협상 이후로 연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해외시장이 속속 경쟁국에 잠식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언제 타결될지도 모르는 WTO 농업 협상을 마냥 기다리고 있자는 말인가. 그리고 이미 중요한 품목들은 다 예외로 하거나 WTO 농업 협상 이후에 재협의하는 쪽으로 연기시킨 한·칠레 FTA가 WTO 농업 협상에 무슨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가.

아무리 총선이 코앞에 있고 농민 표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 국가 이익을 도외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헌법은 국회의원이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록 선출은 지역 단위로 이루어지지만 일단 의원으로 선출되면 지역구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와 농촌 출신 의원, 농민단체 등이 또 다시 농민 지원 방법에 대해 논의한다고 하지만 그 동안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다 내놓은 상태에서 더 이상 농민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이 있을 지 의아스럽다. 농민단체들의 반대논리로 볼 때 1,000억원, 2,000억원 아니라 1조원, 2조원을 더 준다고 해서 과연 설득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처럼 반대하는 측을 달래기 위해 보상금액을 늘려가며 FTA를 체결한다면 앞으로 보상금액은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된다. 일본, 미국, 중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과 FTA를 추진할 경우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한·칠레 FTA보다 클 수밖에 없다.

우리가 FTA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다른 나라도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식이 아니라 수출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경제 입장에서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무수히 보도된 대로 세계 교역 중 FTA 체결국 간에 이루어지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은 FTA 없이는 세계시장에 대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멕시코는 FTA 비체결국에서 수입하는 자동차에 대해 50%의 관세를 부과하고, 타이어에 대해서는 30∼90%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자동차나 타이어를 멕시코에 수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한 번 더 논의하기로 했다면 단순히 농민에 대한 피해보상액을 늘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 농업을 위하고 국가경제를 위하는 것인지 심사숙고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란다. 부디 우리 경제의 위태로운 상황을 직시하고 국가경제를 위해서 지혜로운 결정을 내려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이 석 영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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