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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두번째 큰 시련 안겨준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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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두번째 큰 시련 안겨준 IMF

입력
2004.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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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도 올해처럼 그렇게 추웠던 것 같다.아니, 내 마음이 그랬는지 모른다.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들어선 이후 이듬해 초는 그렇게 싸늘했다. IMF의 충격파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내가 경영하는 출판사 다섯수레도 예외가 아니었다. 책을 미리 주고 어음만 받아놓은 것이 서적 도매상들이 연쇄부도가 나는 바람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우리 같은 출판사들이 부지기수였다.

받은 어음 내놓고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지업체나 인쇄소 대금은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현금 1억4,000만원이 필요했다.

부도 난 도매상들로부터 들어왔거나 들어와야 할 돈이었다. 출판금고를 비롯해 급전을 융통할 수 있는 곳은 모두 돌아다녔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염량세태를 절감하게 됐다. 줄곧 거래하던 제지업체 간부가 "다섯수레와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왔다. 우리 사정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하는 원망의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종이회사들이 출판사들의 처지를 알아채고 현금이 아니면 종이를 주지 않았다. 어음이 휴지조각이나 다름 없던 시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맺어왔던 그 모든 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종이를 구하지 못하면 그나마 계획했던 책은 어떻게 찍는단 말인가. 책을 찍어 팔아야 빚이고 대금이고 갚을 것이 아닌가.

1988년 창업 이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실히 출판업에 종사해 왔다. 그 동안 대금 한 번 밀리지 않고 성실하게 거래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었건만 어찌 하루 아침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동안 우리 회사가 썩 욕 먹을 짓은 안했던 모양이다. 평소 거래가 없던 다른 제지업체 사장이 "대금 못 받아도 좋으니 다섯수레 김 사장이라면 거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 이 얘기를 들었는지 거래업체 사장도 "아랫사람이 뭘 잘못 알고 얘기한 모양인데 거래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다시 병이 도져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장 출혈로 9번이나 입원했던 것이 도진 모양이었다.

IMF 당시야 누구나 그랬겠지만 98년 한 해가 내겐 인생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해였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5년 동아일보 기자였던 나는 동료 기자들과 함께 자유언론을 실천하다가 부당하게 해직당했다. 가장 큰 시련이었다. 그 때의 울분과 분노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는가? IMF는 기자 해직과는 또 다른 차원의 시련이었다.

청년 실업이다 카드 빚이다 해서 그 시절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다. 출판계도 도서 정가제가 무너지면서 서점들이 자꾸 문을 닫고 있다. 그 추운 겨울은 다시 오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김 태 진 다섯수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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