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첫 시험에서 꼴찌를 한 학생의 마음은 어떨까? 더욱이 중학교 때 반에서 일등도 해봤던 학생이라면. 청천벽력의 파장은, 본인은 물론 부모님까지 번져나간다. 중간고사를 망쳤으니 기말고사에서 복구해보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다져보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고 하위권을 맴돌 뿐이다. 2학기까지 이 상태가 유지되면 학생은 좌절에 빠지게 된다. '해도 안 된다'는 자괴감의 늪에 걸려드는 것이다. 자신감이 없어지니 학습효율도 떨어지기 마련. 자포자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가상의 상황이 아니다. 실제 특목고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사례이다. 우수학생이 몰리는 특목고에도 어쩔 수없이 꼴찌는 있기 때문이다. 일반고로 진학했다면 공부를 잘 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명문대로 진학했을 학생이 대학진학에 실패하는 경우도 벌어진다. 경쟁에 치일 가능성이 높은 심약한 학생들이 주로 희생양이 된다.
특목고의 함정에 관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얘기를 해보지만 진실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하위권에 떨어지는 것은 남들이지 자신일리는 없다고 굳게 믿는 탓이다.
사교육의 도움 없이 학교가 어련히 알아서 명문대 진학을 보장하리라는 부모들의 맹신이 특목고 신화의 한 축을 이룬다. 남 보다 좋은 학교로 진학하겠다는 이기심도 특목고행을 부추긴다. 학원가의 상술도 한몫 거든다. 학원가에서 대입시장은 이제 포화상태라고 볼 수 있다. 대입학원에서 발 빠르게 특목고 준비학원으로 옮겨 탄 원장들의 호황을 보면서 특목고 학원만 늘어나고 있다. 수완 좋은 원장들이 많아지는 만큼 특목고 준비생도 갈수록 늘어난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셈이다.
특목고 열풍의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지나친 선행학습과 이로 인한 학습의 비효율성이 많은 학생들을 괴롭힌다. 특목고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수학정석'을 보는 학생도 있다. 고1 과정을 초등학교 학생이 배우니 제대로 이해가 될 리 없고 과외와 학원에서 같은 책을 3번 이상 반복 학습하기도 한다.
제때 배우면 몇 개월에 가능한 공부를 4년이나 배우니 공부가 지겨울 수밖에 없다. 책도 읽고 운동도 하면서 본격적인 승부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가 필요한 시기에 많은 학생들은 특목고를 들어가보지도 못한 채 상처를 받는다. 들어간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특목고에서 무수히 겪게 될 체념은 더 큰 부담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심신이 피폐해진 학생들은 세칭 '날아 다니는' 학생들 앞에 주눅들기 십상. 남들이 12시간 공부할 때 놀면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특출 난 영재급 학생들 앞에 좌절하지 않을 학생은 없다. 그 것도 같은 반에 몇 명이나 그런 경쟁자가 있다면…
우수 학생들이 모인 특목고가 수준도 높고 학습분위기가 좋은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다만 선행학습으로 인한 부담과 폐해를 감수할 수 있는지, 과연 성격이 강퍅한 경쟁을 견뎌낼 수 있을 지, 좌절과 마음의 상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지 등은 따져봐야 한다.
과학고를 지원하겠다는 조카에게 했던 말이 기억 난다. "용 꼬리보다는 뱀 대가리가 더 낫다. 먼저 작은 도전으로 한계와 능력을 키우고 자신감을 갖는 게 인생의 출발점에 선 너에게 필요한 일이다."
/황&리 한의원장 겸 수험생컨설턴트 hwangnl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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