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일곱 번째라구요? 누군가 제가 한국에 몇 번 왔나 세었다니 기쁘네요. 한국에 오면 고향처럼 편안해요. 청중들이 제 연주에 아주 깊이 집중하기 때문이죠. 현대는 소음의 시대입니다. 어딜 가나 소음이 넘치죠. 제가 말하는 소음은 고전음악을 인공적으로 생산하는 건데요, 예를 들면 호텔이나 비행기, 엘리베이터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흘려 듣는 소음일 뿐 음악이 아니에요. 집중해서 듣고 감동과 환상을 자아내는 것, 그게 음악이지요."우리 시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꼽히는 기돈 크레머(47)가 한국 청중들에게 건네는 기분 좋은 인사다. 자신이 이끄는 실내악단 '크레머라타 발티카'의 공연을 앞두고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난 크레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다소 투박하고 느릿한 영어로 말을 이어갔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한 인상이다.
크레머라타 발티카는 발트 3국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젊은 음악가들로 이뤄진 단체. 라트비아 출신인 크레머가 1991년 만들었다. 2001년 이후 두 번째로 내한, 16일 울산 문화예술회관,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18일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어제(12일)가 크레머라타 발티카의 일곱 번째 생일이었는데, 이번 생일 파티는 울산에서 하게 될 것 같군요."
크레머는 지난달 말 미국 볼티모어에서 300만 달러 짜리 바이올린을 잃어버렸다가 몇 시간 만에 되찾았다. "그 일로 내가 더 유명해질 줄은 몰랐다"며 전말을 소개했다. "바이올린이 저한테 화가 났었나 봐요. 그날 아침 한 단원이 아파서 한국에 같이 못 간다는 전화를 받고 대체할 단원 찾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바이올린에는 신경을 못썼거든요. 되찾고 나서 바이올린에게 사과했죠. 그래서인지 소리는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데요." 크레머의 부드러운 유머에 웃음이 터졌다.
지금까지 100장이 넘는 음반을 낸 그는 베스트 음반이 뭐냐는 질문에 '아직 발표하지 않은 두 장'이라고 답했다. 크레머라타 발티카와 함께 녹음한 슈베르트의 G장조 현악사중주, 그리고 독주 앨범인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란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슈베르트. 슈베르트 음악을 편곡한 곡들로 짰다. "최선의 편곡은 원곡을 만든 예술가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죠. 최악의 예는 농담으로 설명하지요. 누가 물었답니다.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같은 작곡가가 누구야? 답은 '핸드폰 음악 만든 사람들'이랍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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