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한가운데 하나의 점으로 찍혀 있는 조그만 섬나라의 빈민 출신. 단돈 500달러를 들고 고향을 떠난 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전전하며 경비, 목수 등을 통해 투어 경비를 대던 까마득한 무명시절. 프로 전향 12년 만에 어렵사리 진출한 미국무대에서 겪었던 인종차별. 경기장에 가장 먼저 도착, 가장 늦게 떠나는 것으로 유명할 만큼 지독한 연습을 통해 일군 생애 첫 상금왕.'미국 대륙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피지의 국민영웅 비제이 싱(41)의 인생이력서다. 불혹에 접어들면서 더욱 원숙한 기량으로 지난해 시즌 4승을 올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싱은 그러나 자신의 이력서는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말한다. 싱에게 '넘버2'는 종착역이 아니다. 싱은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독재를 끝내겠다며 '골프 쿠데타'를 선언했다.
희망사항만은 아니다. 1999년 이후 기웃거릴 엄두도 내지 못했던 우즈의 일인천하 아성이지만 이를 무너뜨리겠다는 싱의 기세는 가공할 만하다. 이미 지난해 4년간 우즈가 지켜오던 상금왕 고지도 빼앗았다. AT&T페블비치내셔널프로암 우승으로 톱10 연속 경기 기록도 '12'로 늘리면서 새로운 전설에 도전하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세계랭킹에서 우즈(1위·15.72점)와 싱(8위·5.53점)은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10일(한국시각) 발표된 골프 세계랭킹에서 싱은 지난 주보다 0.65점 오른 10.43점을 받으면서 우즈(13.51점)와의 격차를 3.08점으로 바짝 줄였다.
그래서 요즘 미국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싱과 우즈의 대결에 모아지고 있다. 미국 스포츠전문케이블인 ESPN이 AT&T페블비치내셔널프로암이 끝난 직후 10만여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올해 우즈를 꺾을 선수'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64.2%의 팬들이 싱에게 지지표를 보냈다. 잡초같은 근성을 갖춘 싱과는 달리 메이저무관의 필 미켈슨(미국·19.1%)과 심약한 어니 엘스(남아공·10.4%)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우즈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평가다.
이번 주 싱과 우즈가 격돌하는 뷰익인비테이셔널은 세계골프계 권력구도의 향배를 점칠 수 있는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싱이 이 대회에 뛴 것은 1994년과 2002년 단 2번뿐. 그것도 94년 61위와 2002년 공동 11위 등 신통치 못한 성적을 올렸던 이 대회에 싱은 주저없이 출전신청서를 냈다. 디펜딩챔피언으로 시즌 개막전인 메르세데스챔피언십 이후 한달 만에 투어에 복귀하는 우즈에 대한 정면 도전인 셈이다.
좋은 결과는 장담하기 힘들다. 대회가 열리는 토리파인스골프장은 우즈의 '땅'이나 다름없다. 우즈는 98년부터 꾸준하게 이 대회에 참가해 23라운드를 뛰는 동안 평균 67.78타를 치면서 2승을 포함, 나머지는 모두 톱5에 들 만큼 찰떡궁합을 과시해 왔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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