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전용관' 코너의 취지가 이미 개봉된 영화에 핑크빛 필터를 살짝 끼워 은밀한 쾌감을 즐기자는 것이었다면, 개봉하려면 아직 몇 주 남은 '신설국'(新雪國·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괜히 기대감만 부풀리는 일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린 그 영화를 이미 본 것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기민한 네티즌에 의해 2002년 겨울부터 돌기 시작한 40여 장의 캡쳐 사진 때문에? 아니면 '그 장면'만을 발췌한 동영상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최근 홈페이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묘한 상황이 그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를 주고 있기 때문에?사건 개요는 간단하다. 일본 문화 4차개방 덕분에 개봉하게 된 일본 여배우 유민의 데뷔작 '신설국'엔 그녀의 정사 신이 두 장면 있다. 러닝타임으로 치면 3분 남짓. 타인의 속살을 보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욕망은 여기서 침소봉대의 결과를 낳았고, 그 3분은 영화 전체로 탈바꿈하여 '신설국'은 마치 에로 영화처럼 선전되고 있다. 출연한 배우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유민은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신설국'은 그런 영화가 아니라며 울먹였다. 그런데 두 번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 '신설국' 홈페이지의 성인 인증 코너에 그녀의 노출 장면 사진이 약간의 모자이크 처리와 함께 올라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진이냐고? 음…. 지금은 서버가 다운되어서 더 튼튼한 놈으로 교체 중이란다.
하지만 이런 일은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지 않다. 언젠가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폴라 X'라는 영화의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이때 이 영화에 대한 화끈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섹스 신에서 진짜로 한다더라." 감독과 함께 방한한 여배우는, 바로 그 장면에 대해서만 반복되는 질문 앞에서 짜증을 냈고, 아무튼 그 소문 덕분인지 영화는 꽤 손님을 끌어 모았다. 정작 그 장면은 어땠냐고? 우리의 심의위원들이 어떤 분들인가. 실제로 하든 가짜로 하든, 우리가 뭔가 느낄 만큼 화끈한 화면을 제공하는 데는 무척이나 인색한 분들이시고, 가위질을 피할 수 없었던 영화는 꽤나 느슨해졌다.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야한' 장면이 영화 그 자체로 확대 재생산되는 배우의 인권(?) 문제와도 관련될 때도 있으며 영화 자체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결혼은, 미친짓이다'도 그랬다. 영화 개봉 전, 이 영화의 서늘한 주제의식은 뒷전이었고 관심의 초점은 대부분 정사 신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사 신 외에도 훨씬 많은 즐길거리가 있는 영화였음이, 뒤늦게 판명되었다. '해피엔드'도 마찬가지였다. '킬 빌'의 경우엔 그저 폭력 액션이 흘러 넘치는 영화로 인식되었고, 몇 장면이 잘려나갔다고 하자 흥행 성적은 예상 외로 저조해졌다. 지금 막 촬영을 시작한 '얼굴 없는 미녀'에 대한 관심은 그저 "김혜수가 벗는다"는 '소문'뿐인 것 같다. 정작 영화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는 듯하다. 배우 당사자로서는 조금은 서운한 일이다. 정말로 섹스 신의 역할은 개봉 전의 호객꾼 혹은 '삐끼' 밖엔 없는 것일까? 그것이 에로의 숙명이라면, 조금은 씁쓸한 일이다.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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