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전자상가에서 디지털 기기를 취급하고 있는 D사의 직원 K씨는 최근 매월 중순 쯤이 되면 곤욕을 겪는다. A카드사의 신용카드를 보유한 고객들의 결제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 처음에는 고객의 월 사용 한도 초과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특정 카드만 계속 결제가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카드사 측에 문의해 보니 "가맹점 사용 한도가 초과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D사에 부여된 사용 한도는 월 2,000만원. 최근 매장이 하나 더 늘어난 데다 프로젝터, 디지털 카메라 등 고가 제품을 판매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한도였다. 회사측에 요청해 한도 확대를 추진하던 K씨는 더욱 황당한 일을 겪었다. 최근 D사 결제 대금의 연체율이 소폭 상승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월 한도를 1,700만원으로 축소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 K씨는 "고객들이 의도적으로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속칭 카드깡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신용카드사들이 개인 고객 뿐 아니라 가맹점에도 사용 한도를 부여하고 점차 축소해 나가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9일 카드 업계에 따르면 각 카드사들은 전자 상가, 유흥 주점, 방문 판매업 등 카드깡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업종을 '불량 징후 업종'으로 구분하고 이들 가맹점에 대해 신용카드 가맹점 규약에 따라 월, 주, 일 단위의 사용 한도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카드사 경영이 어려워지고 카드깡 피해가 늘어나면서 한도를 대폭 축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업종에 대해 한도를 부여하는 것은 건전한 거래를 유도하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별 가맹점에 대한 실태 조사 없이 통상 업종 별로 무차별적인 규제가 이뤄지면서 선의의 피해자들이 양산된다는 지적도 높다. 카드사들은 "한도 상향 요청이 들어오면 검토를 통해 합리적으로 조정을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가맹점들은 "불법 카드깡이 실제 일어나는지 매장에 실사를 나와달라고 요구를 해도 묵살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실제 카드깡이 없는 가맹점에 대해서는 연체율이 높아졌다는 등의 구실을 대고 한도를 축소하기도 한다"고 실토했다.
고객 입장에서는 이중 규제를 받는다는 지적도 있다. 본인의 신용 상태에 따른 월 사용 한도 규제에 더해 가맹점 한도에 걸려 결제를 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기 때문. 업계 한 관계자는 "개인 신용이 충분한데도 가맹점 한도 규제 때문에 결제를 하지 못하는 실태는 앞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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