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단순한 소품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영화제작자와 자동차 회사간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이지만, 감독이 자동차광인 경우도 많다. 배우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는 물론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까지 일약 대스타로 만든 영화 '나쁜 녀석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5년의 전편도 그랬지만, 지난해 개봉했던 속편에서는 자동차광이자 유명CF감독 출신 마이클 베이 감독은 자동차 추격장면을 TV광고처럼 연출하고 있다.미국 마이애미 경찰 마약단속반의 '나쁜 녀석들' 콤비인 마이크(윌 스미스)와 마커스(마틴 로렌스)는 이 영화에서 스포츠카 페라리 마라넬로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허머2를 운전한다. 490마력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마라넬로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96㎞에 도달하는 시간이 4.2초에 불과하며 최고속도는 320㎞다. 주인공들은 이 차를 몰고 마이애미시 한복판의 해변교각 위에서 마약상을 추격하면서 총격전을 펼치는데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 도움 없이 실제로 추격신을 연출했다고 한다. 국내 판매가로 4억원이 넘는 고가 모델이기 때문인지 다른 차들이 무참하게 부서지는 와중에도 마라넬로는 전조등만 약간 파손되는데 그친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마라넬로의 가속성과 운동성은 흥분 그 자체이다 .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허머2는 다른 차원에서 흥분을 선사한다. 언덕의 주택가를 초토화 시키며 마약상 소굴을 탈출하는 라스트 신에서는 차로 진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들 정도로 언덕을 질주한다. 하지만 허머2는 8기통 6,000㎤에 달하는 엔진과 공차중량만 3톤에 달하는 까닭에 미국에서 조차 기름을 많이 먹는다는 뜻의 거즐러(guzzler)라고 불리며 환경론자들의 불매운동 리스트에 올라있다.
얼마 전 새벽, 서울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빙판에 미끄러져 크게 파손된 마라넬로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 많은 국내 자동차 마니아들을 안타깝게 한 적이 있다. 외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최고급 스포츠카를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되고, 심지어 사고가 나 화제가 될 만큼 우리나라 거리에도 빠르게 수입차가 늘고 있다.
/자동차기고가 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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