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나면 갖게 되는 의문 하나. 주인공 현수(권상우)가 말죽거리로 이사를 온 것은 부동산 투기 바람을 일찌감치 눈치 챈 엄마 때문이라는데, 왜 엄마는 영화 내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일까. 엄마는 애가 퇴학을 당하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땅 보러 다니느라 바빠서 그랬나?생각해보면 '친구'에서도 그랬다. 동수나 준석이에게 엄마는 없다. 죽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난장판 만들고 퇴학을 당해도 '어머니'는 없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어머니는 말을 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말을 못하는 어머니는 전쟁터에 끌려 가는 두 아들을 보면서도 "내 새끼 데려가지 말라"고 애원 한마디 하지 못한다. '실미도'에서도 인찬(설경구)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인생이 달라지지만, 어머니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사진 속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다. 한국전쟁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를 재연한 영화에서, 어머니는 없었다. 그저 남자들끼리 할퀴고, 상처주는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엄마들은 무엇을 한 것일까. 엄마는 전쟁이 끝난 지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모던 보이'의 유혹에 빠져 춤바람이 나서( '자유부인', 1956년) 세상의 온갖 비난을 받아야 했다. 누나들도 한 일은 있다. 실미도에서 오라버니들이 박박 기고 있을 때, 유치원 교사라는 멀쩡한 직업을 가진 혜영(문희)은 유부남의 아이를 낳아 본처에게 아들을 빼앗기며('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세상을 눈물 바다로 만들었다. 현수가 구질구질한 편입학원에서 "그래도 대학엔 가야 한다"며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누님들은 외로운 남성의 친구라는 호스테스로 살다가 결국 버림 받았다('26X365=0', 1979년). 동수와 준석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니가 하와이 가라"하며 다투고 있을 때, 안씨(이미숙) 누님은 지겨운 현실을 떠나 일제시대 용담골에서 '뽕'(1985년)을 따고 있었다.
이렇게 바쁜 어머님과 누님들 때문에 전쟁과 정치성 강한 영화에 여자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먹고 살기도 바쁜 전쟁 중에도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는 것은 어찌 된 연유일까.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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