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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프리즘/"실미도"는 다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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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프리즘/"실미도"는 다큐가 아니다

입력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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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오락 영화다. 개인적 평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것도 영화적으로 보면 그리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지 않는. 온갖 범죄자들로 구성한 특공대의 활약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를 모방한 듯한 전형적 인물설정이 그렇고, 관습적 캐릭터와 지나칠 만큼 마초적 표현에 집착한 것이 그렇다. 새로운 영상미학에 대한 고민과 시도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금단에 도전이 흥행비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미도'는 대단한 영화다. 한국영화사상 영화 한 편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난리를 친 적은 없었다. 극장을 찾지 않던 60, 70대까지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1,000만 관객'이란 대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게 됐다. 영화 1편의 경제효과가 3,400억원이라니. 할리우드에서나 가능한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실미도'의 가공할 위력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소재 그 자체에 있다. 광기와 폭력의 시대에 있었던 우리의 부끄럽고 끔찍한 사건, 3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분단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비극을 불완전하지만 용기있게 담아낸 것이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흥행에 적중했다. 사실 '실미도'를 7, 8년 전부터 충무로에서는 영화로 만들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엄청난 제작비에 비해 "흥행성이 약하다"는 정말 단순한 상업논리로 엎어지곤 했다. 그것을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누구보다 상업적 계산이 빠른 강우석 감독이 집어 든 셈이다. 2004년 지금 이 순간, 상업적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결국은 무산 됐지만, 처음 할리우드 메이저인 콜롬비아트라이스타가 직접 투자 및 세계 배급을 하겠다고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가 큰 힘이 됐으리라.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을 확인시켰다. 한국영화가 이제는 누구도 섣불리 꺼내기 힘든 금단영역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 그 위험한 도전이야말로 가장 상업적이라는 것. 때문에 어쩌면 '실미도'야 말로 용기있는 선택이 아니라,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안전한 상업적 선택이었다.

이런 오락상업영화 한 편에 역사의식이나 진실성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인지 모른다. 거꾸로 사회적 반향을 이용해 영화가 마치 진실을 파헤치려 고뇌한 작품처럼 과대평가하는 것도 우습다. 이는 '실미도'가 제약이 많기는 했지만, 진실을 파헤치려는 작업에 시간과 정열을 쏟기보다는 몇 년 전 월간지에 실린 관련기사와 극소수의 증언, 그리고 허구가 많은 백동호의 동명 소설에 의존한 채 흥미를 위해 극단적 상상력을 입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상상력이 결과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말았다. '모든 부대원이 전과자 출신'이라는 것부터가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속상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실미도'의 존재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다. 영화 '실미도'야말로 1971년 사건 발생 후 32년간 아무도 말하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던 우리현대사의 끔찍한 비극을 밝히는 기폭제가 된 '문화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역할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게다가 '실미도' 제작사는 9일 "다른 것은 몰라도 공군본부에 실미도사건 관련 사망자 위령탑은 세워줄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진실규명은 국민의 몫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하더라도 영화가 진실만을 말할 의무는 없다. 영화는 7일 방영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죽음의 섬 실미도―8.23 군특수범 난동사건의 진실' 같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모든 진실은 이제 우리 국민 스스로 밝혀내야 한다. 역사의 상처와 비극의 진실을 영화에 의존하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다.

/이대현 문화부장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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