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요구로 올 신학기부터 18종의 중·고교 경제·사회 교과서에서 42군데가 수정된다. 재계가 반(反) 기업 정서를 조장한다며 수정을 요구한 대목이 62곳이니, 숫자로만 보면 대폭 고쳐진 셈이다.그러나 재계의 요구를 뜯어 보면 교과서를 친(親) 기업 논리로 개조하겠다는 다분히 전략적인 '교과서 손보기'가 태반이다. 교과서 전반에 흐르는 메시지는 고려하지 않고, 문구 하나를 끄집어 내 트집 잡는 식이다. 과거 재벌 주도 경제성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까지 바꿔달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계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정경유착이 심화하고, 생산성에 못 미치는 저임금 정책으로 노사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으며 ∼ '라는 한 교과서의 대목은 어디를 봐도 대부분 학자들이 인정하는 제대로 된 역사 기술이지, 반 기업적 표현이 아니다. 청소년용 교과서가 대학생용 미시경제학 이론서가 아닌 이상, 우리나라 경제사에 대한 정확한 기술은 필수적이다.
재계는 또 '기업가는 이윤을 사회에 되돌리는 경영에 힘써야 한다'는 대목도 문제 삼았다. 기업 자체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 이론상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기업가 개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 가치이다. 재계의 '미스터 쓴소리'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도 교사 대상 강연회에서 "기부금을 내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라 빌 게이츠"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재계는 온 나라가 경제살리기에 발 벗고 나선 분위기를 이용, 기업 편향적 논리로 국민들을 의식화하려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봐야 한다. 이번에 교과서 저자들이 대부분 재계의 요구들에 대해 문맥만 약간씩 다듬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유병률 산업부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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