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여러 명 있다. 2002년에는 우주의 뉴트리노 소립자를 관측한 고시바 마사아키 됴쿄대 명예교수가 물리학상을, 레이저 광선을 이용해 질량분석기를 만드는 원리를 찾아낸 다나카 고이치 시마즈 제작소 주임이 화학상을 각각 수상했다.세상의 관심은 온통 다나카에게만 집중됐다. 박사학위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장기 불황으로 침체됐던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를 쇄신하는 효과도 컸다. 1987년 당시 다나카에게 특허보상금으로 1만1,000엔을 주었던 회사는 노벨상 수상 발표이후 주가가 급등했다. 출세에 신경 쓰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는 회사원과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연구원이 느긋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안목 있는 경영자가 많다는 것이 일본의 진짜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자만이 아니다. 일본의 일반 생산직 노동자들도 학습과 자기 능력 계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번영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에는 전세계에서 일본적 경영과 노사관계의 비결을 배우자는 논의가 무성했다. 대부분의 논객들은 기업별 노조와 협조적 노사관계를 중시했지만 일본 기업의 저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우수한 지적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지나칠 수 없다. 포드를 제치고 세계 제2위의 자동차메이커로 올라선 도요타의 경영 방식을 보면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소집단 단위로 작업 개선 방법을 연구하여 품질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자주관리 활동이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다.
노동자의 자주 관리 활동을 '관리자가 시키니까 억지로 하는 일'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엄청난 오해이다. 신좌익 운동으로 대형 공안사건이 빈발하던 1970년대 초 학생운동을 하다가 철강공장에 취업한 한 활동가도 자주관리 활동의 효과를 인정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육체노동을 하다가 한 달에 한 번 2시간 동안 작업 개선을 위한 토론을 하면 신기하게도 그 동안 모르고 지내던 스위치나 계기가 보이게 되고 자신도 보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사실 일본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반적인 교육수준의 상승으로 고학력 생산직 노동자가 많아졌기 때문에 관리자들의 권위가 확립되지 않아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겼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1960년대 말부터 등장한 것이 자주관리활동이었다. 이는 고학력 노동자가 보람을 느끼고 회사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됐다. 자주관리활동을 하면서 신입사원이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원도 우수한 숙련공의 노하우와 지식을 전수 받아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게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능력을 계발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과정을 빼놓고 일본 기업의 내부 통합력을 논의할 수는 없다. 일본 기업이 전공을 크게 따지지 않고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관행을 갖고 있는 것도 내부의 교육훈련프로그램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 때문에 일본의 대학이 모두 부실하다고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국공립대의 경우 이공계 실험실의 기본 운영비는 정규 예산에서 충당하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대학연구소의 위상이 단과대학과 동격이고 전임교수와 독자적인 예산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학원생이 연구비와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연구팀의 일원이 되어 실무적인 능력을 현장에서 배워가며 학위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프로젝트 수주에 실패해도 연구소의 기간조직과 자료가 남아있고, 기본 예산은 배정돼 있으므로 장기적인 기초연구가 가능하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대학 조직을 개편하는 유연성도 주목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 내부에서는 국제화 캠페인이 한창 벌어지고 국제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일본은 세계에서 해외개발원조(ODA)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나라가 됐다. 일본정부는 1990년대 초에 나고야대, 고베대, 히로시마대에 '국제협력연구과'라는 대학원 조직을 설치해 개발 원조 전문가와 국제기구 실무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지출하는 해외원조 자금과 국제기구 분담금이 제대로 집행되려면 유능한 요원이 배치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국립대학에 새로운 과정을 설치한 것이다. 당시 국립대에서는 '스크랩 앤드 빌드'(scrape & build·구조합리화)의 원칙으로 인기가 저하된 외국어를 비롯한 기초 인문사회과학 부문을 부분적으로 폐쇄하고 자원을 사회적 수요가 있는 국제지역학 부문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사립대로 확산됐다.
1945년 이전부터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외국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축적해 온 기초가 있었으므로 이와 같이 사회적 수요에 맞춘 유연한 대학조직의 개편이 가능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국제 지역연구와 같은 기초연구도 대학별로 특성화해 집중 투자하는 동시에 대학간 경계를 낮추어 시설과 자료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전체적인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공동이용 시설'이라는 지위를 가진 조직이 국립대학 내부에 많다.
일본이 발휘하는 국가경쟁력의 상당한 부분은 우수한 인적자원에서 나온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인적자원 개발에도 장기적 안목을 가진 기초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기업 스스로가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종 구/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50세 서울대 사회학과 졸, 일본 도쿄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저서-일본의 지방자치와 노동행정(한국노동연구원) 등
■종신고용·연공서열 일본식 경영 "불황 탈출의 동력" 재평가 활발
한때 세계가 주목했던 일본식 경영은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를 근간으로 한다. 일본의 고도성장기였던 1970∼80년대 일본 기업들은 대규모 정기 공채를 통해 사원들을 확보했고 이들에게 종신고용을 보장했다. 또한 근무연수에 따라 임금과 퇴직금, 직위 등이 높아지는 연공서열제와 철저한 복리후생제도를 실시했다. 이 같은 제도들은 본래 목적인 업무 팽창기의 인재 유출을 막아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게다가 사원들에게 애사심과 자기계발의 동기를 부여하고, 사원들 간에 기능과 지식의 계승을 용이하게 하는 등 일본식 경영의 요체가 됐다.
그러나 장기 불황이 닥치자 일본식 경영의 장점은 단점으로 지적됐다. 우선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제는 저성장기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의 양성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회사에 필요하지 않은 사원이라도 한번 입사하면 장기간 고용해야 하는 등 저성장시대에 맞지 않는 경영방식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같은 일본식 경영에 대한 평가는 아직 마침표가 아니다. 장기 불황 속에서도 높은 이익을 내고 있는 일본 기업들은 일본식 경영의 포기가 아니라 발전·강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신고용을 고수한 기업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업적을 냄으로써 일본식 고용 관행에 자신감 회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불황 속에서도 대표적인 고성장 기업으로 꼽히고 있는 캐논은 부실사업 매각 등 미국식 개혁조치를 단행했지만 일본식 종신고용은 고수했다. 미국식 경쟁원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세계 2위의 자동차기업으로 도약한 도요타도 일본식 경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기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 연봉을 따라 이합집산하는 조직보다는 공동운명체 의식으로 무장한 조직이 힘을 발휘한다고 믿고 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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