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금 이곳에선/신도시 개발 청사진 쏟아지는 수도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금 이곳에선/신도시 개발 청사진 쏟아지는 수도권

입력
2004.02.09 00:00
0 0

"신도시 개발을 그렇게 성급하게,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건가요. 투기꾼들이야 좋아하겠지만 농사 짓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경기도가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 평화신도시 건설 후보지로 밝힌 평택시의 농민 홍성동(40·서탄면)씨는 행정관청의 발표가 너무 일방적인 것 아니냐며 고개를 저었다. 기존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와 오산비행장에 더해 용산 미8군까지 이전해오면 농지를 수용당해 생존권에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뜬금 없는 평화신도시 건설 발표로 주민들의 혼란만 부채질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반면 서울공항 인근에서 3대째 농사를 짓는 임영섭(57·성남시 신촌동)씨는 신도시에 대해 약간의 기대를 갖고 있었다. "서울공항이 이전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면 판교 보다 입지조건이 좋으니 금세 개발되지 않겠어요." 임씨는 "통일 되기 전에 공항이 없어지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판교 주민들이 거액의 보상금을 받는 걸 보고 기대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임씨는 평당 200만원의 전답을 조금 더 쳐준다는 구매자가 나타난다면 언제라도 팔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자고 나면 '신도시계획, 공약'

수도권의 신도시 개발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경기도가 지난해 6월 평택과 양주에 각각 평화, 자유신도시 건설을 발표한 데 이어 10월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향후 5년동안 수도권에 150만호(분당규모 신도시 15개 분량)의 신규주택을 공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근에 경기도는 2020년까지 분당규모(40만명)의 신도시 20개를 건설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하기도 했다.

경기도의 발표가 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영동고속도로 인근 어디가 이미 신도시 후보지로 결정됐다느니,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여러 곳의 신도시가 건설된다느니 하는 뜬소문이 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판교 인근지역은 토지를 보러 오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고 매물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주 등 경기북부지역도 군사보호구역 해제, 자유신도시 건설 발표 이후 부동산중개업소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신도시 예정지라는 꼬임에 속아 사실확인 없이 계약했다 계약금을 떼이는 피해사례까지 빈발하고 있다.

의정부시 E공인중개사무소의 김모씨는 "문의전화나 방문자들은 많지만 신도시개발을 아직 확신하지 못해 거래는 뜸하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군사보호구역 해제, 그린벨트 완화 등 호재에다 신도시 개발공약이 잇따르면서 갈 곳 없는 돈이 장기적으로 부동산쪽으로 흘러들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신도시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

그렇다면 과연 대규모 신도시 개발은 가능할까.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지역주민들의 반발, 일관성없는 정부 정책과 추진력 부족, 재원마련의 어려움 등으로 볼 때 상당부분은 청사진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물론 전문가들은 수도권 주택난 해소와 집값 안정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경기도지역의 신도시 개발은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건교부는 향후 5년간 전국적으로 250만호의 신규주택이 필요하고 이중 60%(150만호)를 수도권에 공급할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경기도는 한술 더 떠 2020년까지 분당규모 신도시 20개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경기도는 기존시가지 재개발로 100만가구를 소화하고 신도시 개발로 200만가구를 신규공급한다는 방침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용인시에서 보듯이 민간의 소규모 개발은 난개발로 이어져 도시환경을 악화시킨다는 게 증명됐다"면서 "민간개발을 강력히 억제하는 대신 장기성장계획을 바탕으로 한 분당 같은 신도시를 만들어 나간다는 게 경기도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의도대로라면 수도권은 앞으로 거대한 '신도시벨트'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벌써부터 마찰, '뜨거운 감자'

그러나 벌써부터 파열음이 나고 있다. 경기도의 이 같은 개발구상에 대해 환경·시민단체들과 건교부는 수도권 과밀화를 부추긴다며 반발하고 있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방침은 변함없이 수도권의 과밀·집중화를 막고 균형발전을 유도하는 것"이라며 "경기도의 300만가구 공급발표는 정확한 근거 데이터가 뒤따르지 않아 뭐라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필요 이상의 규모인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또 수원경실련등 환경·시민단체들도 경기도의 이 같은 발표에 대해 "주거환경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 "개발계획을 자꾸 발표하는 이유가 뭐냐"며 이구동성으로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의 주장 역시 완강하다. 경기도 신도시기획단 관계자는 "경기도의 이번 발표는 중앙정부도 하지 않는 장기 통합 청사진"이라면서 "장기계획이 뒷받침된 개발만이 균형개발을 유도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신도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감지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또 "이름만 신도시" 만들라

'실패한 신도시 정책의 대물림은 안됩니다.' 1980년대 극심했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계획됐던 분당 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 당시 110만여명을 수용했던 이들 5개 신도시는 주택난 해소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자족기능 없는 베드타운만 양산했다는 비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정책의 산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말았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건교부와 경기도가 신도시 건설계획을 속속 발표하면서 당시 신도시 정책을 답습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분당 일산 평촌 등 90년대 신도시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은 자급자족기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계속 서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극심한 교통난과 서울로의 U턴현상이 발생하는 등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실제로 인구 43만명인 분당은 전체인구의 절반(53%)이 여전히 하루 3시간 안팎의 교통정체를 무릅쓰고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에 필수적인 제조업 및 서비스 시설이 당초 계획과 달리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산 역시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서울에 직장을 두고 있으며 지역내 업무, 상업시설은 분당보다 더 열악한 현실이다. 평촌, 중동, 산본은 인근 안양 부천 등 기존 시가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만큼 베드타운의 전형이다.

주민들은 "생활환경은 쾌적하지만 특히 교통난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 자꾸 서울로의 재진입을 고려하게 된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저하게 기존 5개 신도시의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만 서울에 흡인되지 않는 '진짜 신도시'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 신도시기획단 박수철 전문위원은 "그동안 주택보급이라는 것에 너무 치중해 신도시를 개발하다보니 여러 문제가 생겼다"면서 "치밀한 계획과 장기적 안목이 없는 한 신도시 정책은 실패를 답습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범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