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2월9일 당시 대통령 노태우가 이끄는 민정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세 사람은 그 해 1월22일 세 당을 합쳐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노태우는 그 얼마 전 연두 기자회견 자리에서 "인위적인 정계 개편은 있을 수 없다"고 밝힌 터여서, 합당 선언이 나라 전체에 몰고 온 충격은 더 컸다.3당 합당은 1988년 4월26일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제6공화국의 첫번째 총선이었던 그 선거에서 민정당은 총의석 299석 가운데 125석을 차지해 원내 제1당 자리는 지켰지만, 의석 점유율은 42%에 그쳤다. 이런 여소야대 상황은 제3공화국 이래 처음으로 국회의 위상을 높였지만, 국회를 수족처럼 부리는 데 익숙해져 있던 집권 세력으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 선거에서 정작 가장 큰 좌절감을 느낀 정치인은 김영삼이었을 터이다. 그는 그 전 해 12월16일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에 이어 차위로 득표했지만, 제13대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은 59석을 얻는 데 그쳐 김대중이 이끄는 평화민주당의 70석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 선거에서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35석을 얻었다.
민자당의 탄생은 여당의 압도적 과반 의석을 통해 국회의 행정부 견제를 무력화하고 싶어했던 노태우와, 원내 제3당의 일인자로서보다는 여권의 2인자로서 차기 권력자 자리를 굳히고 싶어했던 김영삼, 그리고 소수당의 우두머리보다는 다수당 지도부에 끼이고 싶었던 김종필의 계산이 맞아떨어져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김영삼은 호남의 정치적 고립을 가져온 이 3당 합당을 통해 군사 정권에 대한 오랜 투쟁 이력을 접고 그 정권의 일원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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