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940억원의 자금을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강삼재 의원의 법정 진술에 침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이 안풍(安風·안기부 자금의 선거전용)자금의 출처라는 주장은 처음이 아니지만, 강 의원으로부터 법정 진술이 나온 것은 또 다른 문제다.김 전 대통령측은 그동안 "안풍자금이 안기부 예산으로 확인될 경우 변제해야 할 한나라당 변호사측의 주장"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으나, 이번에는 아무 얘기가 없다. 그는 매일 새벽 찾던 동네 배드민턴장도 안가는 등 두문불출하고 있으며 상도동 자택에는 외부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강 의원은 "정치적 신의를 위해 무덤까지 모든 것을 안고 가려 했지만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짓고 배신할 수 없다는 결단에 따라 고심 끝에 심경을 밝힌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강 의원이 신의와 역사 중 후자를 택했다는 주장의 배경을 헤아릴 길 없으나, 안풍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단초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재판부는 김 전 대통령에게 3월12일 증인으로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김 전 대통령이 법원의 출석요구에 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다 떳떳한 것은 전직 국가원수답게 스스로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한 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그는 어느 정치 지도자보다 돈에 관한 한 자신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이 안풍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결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김 전 대통령은 재판의 진행과 수사에 협조해야 할 뿐 아니라 사건의 전모를 자진 공개해야 한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더러, 자신의 정치역정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처사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