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사진첩을 뒤지며 추억을 여행할 때마다 호경이 너의 해맑고 귀여운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의 만남, 일곱 살에서 열 살까지 겨우 4년밖에 안 되는데 가끔씩 네가 그리운 이유는 무얼까?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너를 좋아했기 때문일까? 1970년대 초 경기 수원의 유치원 시절. 합창할 때나 춤을 출 때 우리는 항상 짝꿍이었지. 아마도 그 때 너 말고 다른 여자 애와 파트너가 되면 나는 선생님께 바꿔달라고 마구 졸랐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것이 발칙했던 거지. 갑자기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가 생각나면서 아련해지네. 그 때 기억 나니? 수원시민회관에서 유치원 대항 경연대회(요즘은 재롱잔치라고들 하지) 때 우리 유치원에서 꼭두각시 춤을 추었잖아. 얼굴에 화장을 하고 '따딴 딴딴 딴따따딴' 하는 장단에 맞추어. 그 때도 너와 나는 짝꿍이었는데 서로 얼굴 비비는 사진이 아직도 내 사진첩에서 웃고 있더라고. 사진 속의 너는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 그때의 나는 지금 내가 봐도 참 귀여웠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렇게 가까웠던 넌 초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지.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다구. 선물은커녕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너를 잃어버리고 말았지.이제 어느덧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나는 이리저리 일에 치이고 있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너도 세월을 속일 수 없을 나이가 되었을 테니 아마도 가정을 이루고 있겠지. 어쩌면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혹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면 한번 보자꾸나.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우리 집사람도 내가 종종 얘기를 해서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단다. 꼭 한번 보고 싶다더구나. 만나면 나를 사이에 두고 싸우지는 말고.
호경아, 이 글 보거든 꼭 연락해라. 혹시 호경이 소식 아시는 분 있으면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ajt@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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