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단 생각보다는 하고 싶단 생각을, 하고 싶단 생각보다는 할 수 있단 믿음을 주시길….'선천성 뇌성마비의 중증 1급 지체장애인 박지효(24)씨는 8일 방안 휠체어에 앉아 '평소 가장 좋아한다'는 문장을 컴퓨터 화면에 힘겹게 작성했다. 글자 30여개를 타자하는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10분. 수십 차례 수정 끝에 문장이 완성되자 그는 활짝 웃었다.
신체 거동은 물론, 말도 한 마디 못하는 박씨는 20일 한양대 전기전자공학부를 전학점 평균 3.88점(4.5점 만점)의 성적으로 졸업한다. 그의 대학생활 4년은 학문과의 사투였다. 필기는 물론 각종 수식과 그래프가 난무한 공학을 배우기란 가족들조차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음성합성기를 사용하는 스티븐 호킹 박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요. 아들에겐 휠체어 말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박씨의 어머니 백정신(56)씨는 아들이 공대를 택한 것도 '음성합성기를 직접 만들겠다'는 꿈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수강은 물론 각종 숙제와 시험공부를 위해 매일 새벽 2시까지 전공서적을 탐독했다. 보고서를 쓰는 날이면 잠을 2시간으로 줄였다. 부족한 잠은 등·하교길 차 안에서 보충했고 주말이면 항상 밤을 새웠다. 말로 할 수 없는 질문은 손가락 하나로 작성한 이메일로 해결했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계절수업을 듣느라 방학도 없었다.
3학년 2학기 중간고사 무렵엔 학업을 중단할 위기도 겪었다. 수족이나 다름없던 어머니가 뇌수술을 받은 것. 박씨는 어머니가 3개월 입원한 와중에도 이웃들의 도움으로 학업에 매진했다. 박씨의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누나(박지연·25)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그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면 신음에 가까운 탄성을 내뱉는다. "수업 중에 어려운 문제에 집중할 때 괴성을 지르고 때때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를 참아준 친구들과 교수님들에게 미안할 뿐이죠." 어머니 백씨는 "수업이 있는 강의를 모두 1층으로 옮겨 준 학교와 실험 실습을 항상 도와준 복학생들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감사했다.
박씨의 꿈은 미국 유학에 도전하는 일이다. '호킹 박사와 같은 과학자가 되고 싶냐'고 묻자 그는 중지와 약지 사이에 끼운 펜으로 "누구를 닮을 생각은 없다"고 썼다. 장래 희망에 대한 질문에는 "OS(운영체제)를 꼭 공부하고 싶습니다"고 적었다. 맨 처음 판독도 어려웠던 그의 글씨는 어느새 또렷해졌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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