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본은 북한 핵과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미사일방어(MD) 도입, 헌법개정 논의 등 안보 문제와 관련된 이슈가 어느 때보다도 많아 러일전쟁 100주년에 대한 회고와 평가도 활발하다.요미우리(讀賣)신문이 2일 '일본의 결단―국가전략'이란 제목으로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가졌고, 야마나시가쿠인(山梨學院)대학과 러시아 해군중앙박물관은 '포츠담 강화조약 100주년'을 주제로 3월 러시아, 5월 일본을 오가며 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할 예정이다.
일본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러일전쟁을 놓고 조국방위전쟁 대 제국주의전쟁의 논쟁이 있어왔다. 전자는 한반도를 장악하고 남하하려는 러시아에 맞서 국가안보를 지켜낸 불가피한 전쟁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후자는 한반도와 만주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두 나라가 충돌한 전쟁으로 결국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져 일본 군국주의 패망까지 연결됐다는 주장으로 한국에서도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중학교과서는 러일전쟁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일본의 생사가 걸렸던 장대한 국민전쟁이었다. 일본은 여기에서 승리해 자국의 안전보장을 확립했다. 근대국가로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색인종의 나라 일본이 당시 세계 최대 육군 국가였던 백인제국 러시아에 이긴 것은 세계의 억압 받는 민족에 독립에의 한없는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황색인종이 장래 백색인종을 위협할 것을 경계하는 황화론(黃禍論)이 구미(歐美)에 퍼지는 계기도 됐다."
요즘은 청일전쟁 승리 뒤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3국 간섭, 러시와와 영국 사이에서 고민하던 일본이 영일동맹을 선택하고 러일전쟁을 결심한 과정 등 당시 일본이 처했던 복잡한 국제정세와 일본의 선택을 검증하는 논의가 두드러진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과 떠오르는 중국, 유동적인 한반도 정세 등 일본에게는 여전히 '선택'이 가장 중요한 국가전략이라는 시각이다. 요미우리신문은 러일전쟁 100주년 시리즈에서 "러일전쟁은 일본 근대화의 전환점"이라며 "유럽의 대국 러시아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었던 당시와 핵무장을 고집하는 북한을 한반도의 북반부에 끌어안고 있는 현재의 일본이 처한 지정학적 상황과 한반도의 전략적 의미는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계사적 의미를 평가하려는 게이오대 요코테 신지(橫手愼二) 교수는 총력전·과학기술전이었던 전쟁의 성격, 이상주의를 내건 미국 외교의 본격 등장, 유럽 이외의 새 대국 일본의 등장 등을 이유로 러일전쟁을 "20세기의 출발"로 본다. 제1차 세계대전(1914∼18년)을 20세기의 출발로 보는 것은 유럽 중심 역사관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시각에서 러일전쟁을 제1, 2차 세계대전의 원형인 '제0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학계와 언론계의 움직임과는 달리 일본 정부는 아직도 미해결인 러시아와의 북방 4개 섬(쿠릴열도) 반환 교섭, 중국과 경쟁 중인 시베리아 천연가스 유치계약 등 민감한 외교 과제도 있어 러일전쟁 100주년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나 행사는 하지 않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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