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사상 가장 유명한 자살자는 예수라는 얘기가 있다. 인류에 숭고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으로 나아갔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모든 사회는 자살을 애도하고 동정하면서도, 조물주나 조상에게 죄를 짓는 사악한 행위로 여기는 종교적 인식을 함께 갖고 있다. 영국 같은 나라는 1950년대까지 자살 미수를 처벌했다. 그만큼 자살은 시대와 사회와 개인의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신념이 복잡하게 얽힌 틀 속에서 다양한 평가와 메시지를 남긴다. 그래서 자살에 대한 반응은 아주 개인적인 동시에, 때로 대단히 정치적이다.■ 자살에 대한 반응 가운데 흔한 편견은 그 것이 비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본능보다 원초적인 생존 본능을 누르고 죽음의 공포와 마주 서는 것을 비겁하다고 탓하는 것은 산 자들의 도덕률을 지키려는 이기심의 표현으로 지적된다. 지극히 복잡하고 모순되고 역설적인 동기가 중첩된 개인적 행위를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사회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얘기다. 범죄혐의자가 자살하는 경우에도 사법적 단죄, 정의의 심판을 감당하기를 회피하려는 심리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죽음을 단순한 도피로 보는 것은 자살자의 내면 세계를 자의적으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이 겉보기에 자기 파괴지만, 자기 정체성 또는 자아를 지키려는 궁극적 의지의 표현으로 본다. 자기 인격이 말살될 것이란 두려움으로 심리적 공황에 직면한 사람의 절박한 방어 행동이라는 설명이다. 달리 정신적 말살을 피할 길이 없다는 좌절감에서 스스로 정신보다 육체의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이런 좌절감은 흔히 분노와 보복심리를 수반한다. 자신에게 부당한 짓을 했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사회에 일부라도 복수하려는 심리가 자살 행동에 담겨 있다. 이럴 때 자살자는 자신의 생명을 끊으며 상징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회 제도를 죽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 이처럼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대체로 실체와 동떨어진다. 그런데도 산 자들이 자의적 평가를 되풀이하는 것은 죽음의 의미나 진실보다 자신의 존재와 인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탓이다. 자살은 인간과 사회 자체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다. 안상영 부산시장의 자살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저마다 제 좋은 대로 떠들며 소란스럽지만,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긴 그의 죽음에서 인간과 사회와 정치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자세가 아쉽다. 모든 죽음은 우리 자신의 왜소함을 일깨우기에, 누구나 그 앞에 겸허해야 한다고 했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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