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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발발 100년… 되돌아 본 한반도/"지식인 국제정세 오판이 국권상실 부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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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발발 100년… 되돌아 본 한반도/"지식인 국제정세 오판이 국권상실 부추겨"

입력
2004.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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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일본이 한반도 지배권을 장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러일전쟁이 8일로 발발 100주년을 맞았다. 한반도와 만주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일본은 이날 중국 랴오둥(遼東) 반도 맨 끝 뤼순(旅順)항의 러시아 함대에 기습 발포했고, 다음날 제물포(인천) 앞바다에서 러시아를 대파했다. 1년 반 동안 계속된 힘 겨루기는 뜻밖에도 초반 기선을 제압한 신흥 맹주 일본의 승리로 끝나버렸다.인도 시인 타고르도 찬사를 아끼지 않던 '황색 인종의 위대한 승리', 러시아의 편에 독일과 프랑스가 서고 일본의 뒤에서 영국과 미국이 도왔던 세계대전 전초전의 최대 희생양은 그러나 한국이었다. 100년 전보다 훨씬 세련되고 은밀해지긴 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힘겨루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최근 중국의 역사 왜곡과 일본의 우경화가 러일전쟁 전후의 상황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러일 전쟁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힘 없는 주권 선언은 허상에 불과

"주권국가라는 것은 결코 선언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을 예상하고 중립국을 선포하는 등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지만 의미가 없었습니다. 주변국의 정황을 파악하고 사태를 이용할 수 있는 외교력,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국방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

상당수의 구한말 지식인은 러시아는 야만국, 일본은 문명국이라는 대립되는 이미지를 이들 나라에 대해 갖고 있었다. 일본의 야욕을 가늠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일본의 승리에 덩달아 뿌듯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진회 등은 러일전쟁의 승리 이후 한반도 군사기지화를 위한 일제의 철도부설 작업에 10만 명의 회원을 동원해 도왔다. 품삯으로 지급된 돈까지 헌납했다. 지식인들의 잘못된 정세 파악이 국권 상실을 부추겼다고 할 수 있다.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는 국제관계라는 거시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정세를 분석해야 사태를 올바로 살필 수 있다고 지적한다. 4월 중 러일전쟁과 한국 병합 관련 연구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최 교수는 "전쟁의 고비마다 열강의 이해가 작동했고 전황의 추이는 열강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며 "러일전쟁의 전체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일본의 한국 병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국제 정황의 추이에 맞춘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거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이 같이 종합적인 조망이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재조명 학술회의 등 없어 아쉬워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의 연구나 자료 발굴을 뺀다면, 학계가 체계적으로 이 사건을 평가하는 작업이 없어 아쉽다. 김차규 명지대 교수는 최근 LG연암문고에 소장된 프랑스 주간지 '일뤼스트라시옹' 기사 자료를 통해 "일본과 동맹한 영국이 아르헨티나 전함 2척을 일본이 구입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 러시아와 일본의 군함 전력 균형을 깨뜨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3월에는 역사교육연구회 주최로 '러일전쟁과 역사 교육― 러일 전쟁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당사국인 일본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 중국, 미국, 유럽 등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해석해 가르치고 있는지를 조명하는 자리다.

하지만 이것 말고 현재로는 러일전쟁 평가 학술회의 준비가 전무한 상태. 일본이 지난해부터 러시아 학자들까지 초청하며 여러 차례 학술회의를 연 것과 대조된다. 정재정 교수는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등이 자기의 틀을 고집하며 경직되어 있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문형 교수는 "일본은 러일 전쟁 이후 지금까지 100년 동안 관련 연구가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러일전쟁은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1904년 2월 8일 밤 일본군이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하면서 벌어진 전쟁. 이날 일본 육군은 인천에 상륙해 서울로 향했고 이틀 뒤인 10일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서울에서 북상한 일본군은 연승을 거듭했으며, 1년 만에 중국 랴오둥(遼東) 일대를 대부분 장악했다. 육지전에서 열세를 만회하려던 러시아는 로제스트벤스키 지휘 하에 발틱 함대를 투입해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일전을 벌였으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에 격파돼 전멸했다.

러시아와 일본은 미국의 주선으로 그 해 9월 16일 휴전했으며, 그 결과 일본은 한반도 지배권과 남만주 진출권을 확보했다. 이미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체결로 막대한 토지를 군용지로 흡수하는 등 한반도 지배력의 발판을 마련한 일본은 러일전쟁의 휴전을 전후해 외교권을 박탈하는 등 한국 병합을 가속화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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