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서울 용산구 갈월동 수도고등공민학교 50회 졸업예정자 25명은 7일 열릴 졸업식에서 꽃다발은 받을 수 있지만 이 노래는 듣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후배가 없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문맹자와 진학 실패자, 늦깎이 학생 등을 위해 1954년 개교해 올해로 꼭 50돌을 맞은 수도고등공민학교가 이번 졸업식을 끝으로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 학교의 폐교로 한때 700여개에 달하던 공민학교는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그동안 이 학교가 배출한 학생은 총 2,680명. 이 가운데 유수열(74) 교장의 뇌리에 가장 또렷이 남아 있는 학생은 90년 66세의 나이로 입학했던 민종식(80)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지난해 2월 최고령 기록(79세)을 세우며 방송통신대 국문학과를 당당히 졸업했고 1월 시 '늦가을 장미' 외 2편으로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어엿한 시인으로 등단했다. 졸업식 때면 매번 찾아와 꽃다발을 건네줄 정도로 학교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할머니는 "소학교를 졸업했지만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한이 됐었는데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 학교를 친정처럼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 견딜 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또 졸업 후 남서울대 의상디자인학과를 나와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이미숙(55·95년 졸·여)씨, 신학대학원을 거쳐 지방에서 개척교회 목사로 활동 중인 신동숙(50·92년 졸·여)씨, 청파동에서 구두닦이 생활을 하며 학교를 마친 뒤 지금은 학원강사로 활동 중인 김모(51)씨 등도 유 교장이 잊지 못하는 제자들이다. 유 교장은 1964년 선친이 인수한 학교에서 65년부터 교사로 일해오다 74년부터는 학교운영을 맡아온 산 증인. 여기에 부인 차선옥(71)씨가 교감이자 음악·영어교사이고 아들 재룡(42)씨도 영어교사로 일하는 등 온 가족이 학교 일에 매달려 왔다. 재룡씨는 미국유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고급 인력이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3대째 가업을 이었다. 유 교장은 "한때 학생 수가 540명까지 이를 정도였지만 2001년부터 150명 이내로 줄었고 최근에는 30여명의 학생만으로 겨우 명맥만 이어왔다"고 말했다.
고등공민학교(3년제)는 그간 일반 중학교 과정과 같이 10개 과목에 하루 90분씩 2교시 수업을 했다. 교사들은 교원자격증이 있어야 수업을 맡을 수 있으며 학생은 3년을 다녀야 졸업하지만 검정고시를 통과해야 중졸 자격을 부여 받는다. 2000년 평생교육법이 제정되면서 성인대상 중학교(2년제)만 나오면 중졸 자격이 생기게 돼 이 학교는 폐교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
이달 중순 국민훈장을 받는 유 교장은 "지난해부터는 수도중학교로 인가를 받아 만학도 교육을 계속하고 있어 정규교육기관으로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 셈"이라며 "고등공민학교는 비록 문을 닫지만 수도중학교의 문을 계속 열어놓고 늦깎이 학생들을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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