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많이 통장을 불렸나 재보는 재미도 여간 쏠쏠하지가 않아요." 돈 얘기가 아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던 자원봉사 얘기다. 봉사자에게 통장을 발급해 봉사시간을 기록했다가 본인이 원할 때 그 시간만큼 봉사를 돌려받을 수 있는 '자원봉사은행제'가 큰 호응을 받으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자원봉사은행제는 지역민들끼리 서로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맞교환 할 수 있도록 한 지역교환거래시스템 '레츠(LETS·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를 자원봉사에 적용한 것. 자신의 봉사실적을 마일리지처럼 적립해 두었다 필요할 때 다른 자원봉사자의 서비스를 받는 '봉사 품앗이'인 셈이다.
1999년 서울 동작구가 도입한 '품앗이 자원봉사'는 이제 전국 50여개 지자체에 확산됐고, 경기도는 31개 시·군 전체를 네트워크화해 통합 운영중이다.
봉사 참가도 폭발적으로 늘어
동작구 상도복지관에서 독거노인들의 점심식사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진현(70·동작구 노량진동) 할머니가 99년 '동작자원봉사은행'에서 발급받은 '사랑나눔통장'에는 돈의 입출금처럼 '봉사하신 시간―봉사받으신 시간―남은 시간―거래처' 등의 내역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김 할머니가 지난 38개월 동안 '저축'한 봉사시간은 총 249시간. 할머니는 그 중 59시간을 '인출'했다. 2001년 6월 갑작스레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으면서 전혀 거동을 못하게 되자 은행에 쌓아둔 봉사실적을 활용해 간병 자원봉사자로부터 서비스를 받은 것. 할머니는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돌려받을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며 지금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까지 동작자원봉사은행에 등록된 회원이 적립한 봉사예금은 총37만여 시간. 이 중 인출된 시간은 아직 500여 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이 제도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봉사참가 연인원수도 처음 1만4,500명에서 지난해 9만6,000명으로 7배 가까이 폭증하자 구는 지난해 12월 자원봉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자원봉사센터를 착공했다. 봉사자들은 "살면서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지 않느냐"며 "그럴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으로 퍼져가는 '행복품앗이'
봉사은행의 신현미(25)씨는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한 달에 두세 곳 이상의 지자체들이 견학이나 문의를 해온다"며 "부산 등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일도 있어 우리도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동작구의 봉사은행제를 벤치마킹해 도봉구와 서초구가 이와 비슷한 마일리지 카드제를 통해 자원봉사에 포상체계를 도입했고, 충남 공주시도 지난 2000년 7월 복지봉사은행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경기도는 2002년 각 시·군이 수기로 관리하던 자원봉사 현황을 전산화하면서 이 제도를 도입했다. 경기도청 내에 서버를 두고 31개 시·군의 자원봉사센터를 포탈시스템으로 통합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안양 성남 이천 군포시 등에서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다.
경기 종합자원봉사센터의 김정희(33) 교육팀장은 "도내 등록 봉사자 수가 무려 22만여명으로 급증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봉사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제도가 이렇게까지 뜨거운 호응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