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테닛(사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5일 미국의 이라크 공격 전 정보 분석가들이 이라크를 '긴박한 위협'으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에 대한 정보 왜곡 논란에 새로운 불씨를 지피고 있다.테닛 국장의 발언은 데이비드 케이 전 이라크서베이그룹(ISG·전후 이라크 무기사찰팀)단장의 상원 청문회 증언 후 일고 있는 CIA의 이라크 정보 판단 오류에 대한 비판론을 방어하면서 나온 것이지만 오히려 조지 W 부시 정부의 개전 명분에 대한 회의를 증폭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테닛 국장은 이날 모교인 조지 타운 대 강연에서 "CIA의 이라크 WMD 평가를 왜곡하려는 정치적 압력은 없었다"며 "정보분석가들은 잔인한 독재자(사담 후세인)에 관해 정책 입안자들에게 객관적인 평가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테닛 국장은 또 "이라크에서의 WMD 수색은 85%에도 못 미쳤다. 의혹 해소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케이 전 단장은 지난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나를 포함해 정보분석가들이 거의 모두 틀렸던 것 같다"며 "전쟁 전 이라크에는 생화학 무기가 없었을 것으로 믿는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테닛 국장은 정보요원이 이라크 정부 내부에 깊숙이 침투하지 못함으로써 이라크의 WMD 개발 능력을 과대평가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는 "이라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종합하더라도 우리가 완전하게 옳거나 완전하게 틀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USA투데이는 그의 발언은 부시 정부가 정보의 실체를 과장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잠재적인 정치적 타격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9월 유엔 연설에서 "이라크는 심각하고 점증하는 위협"이라고 말하는 등 수 차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제거의 긴박성을 강조했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연설을 통해 "(데이비드 케이)무기사찰단장이 말했듯이 우리는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무기들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시인했으나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거듭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는 점증하는 위협(gathering threat)이었으며 그 때의 정보로나,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나 미국은 이라크에서 옳은 일은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나 테닛 국장 등의 언급에는 이라크전 개전의 결정적 명분이었던 WMD가 발견되지 않은 것과는 상관 없이 이라크전을 강행한 결정이 바른 판단이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즉각 민주당 등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존 케리(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우리는 오늘 밤 부시와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그리고 그들 정부가 미국민들에게 온전한 사실을 전달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며 "그들은 우리의 국가안보를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웨슬리 클라크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사령관은 성명에서 "부시 정부는 우리가 싸울 필요가 없는 전쟁으로 우리를 잘못 이끌었다"며 "이제 의문은 부시가 그 때 알고 있었던 사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지사는 "정치적 판단과 리더십의 오류에 근거해 전쟁으로의 행진이 이뤄졌다"며 "전쟁을 결정하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한 초당파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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