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지음 푸른숲 발행·2만원
근대화 이후 아시아의 전통 중 유교만큼 시비와 찬반의 대상이 된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는 낡은 관념에다 성차별과 계급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라는 비난과, 천하의 도와 인륜의 이치를 밝히는 근본이라는 상반된 주장이 충돌한지 오래다.
한편에서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비판론이 등장하고, 다른쪽에서는 유교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이 제조되는 식이다. 서구는 아시아의 근대화 시기 유교문화를 아시아 사회, 특히 동북아 사회를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로 삼았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대만 등에서도 시대 조류의 변화에 따라 유교는 늘 시비의 대상이었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는 이 책에서 유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담론의 지형을 폭넓게 조망하고 있다. 유교 때문에 동양이 낙후했다는 서구의 이른바 '오리엔탈리즘' 시각은 대개 아시아의 문명, 전제정치 등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볼테르는 프랑스 절대왕정을 비판하기 위해 유교적 군주를 개명군주로 치켜세웠다. 영국의 세습 귀족들도 한때 신흥 자본계급을 억누르기 위해 유교의 성왕 정치를 이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런 사정은 중국과 대만의 분리 이후 두 사회에서 유교가 겪은 굴절에서도 나타난다. 대만에서는 1960년대부터 몇몇 월간지들이 주도해 집권당의 정통을 확보하고 쇠미한 국운을 되살리기 위해 유교 담론을 통한 권위주의 정권의 공고화를 시도했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76년 마오쩌둥(毛澤東) 사후 문화대혁명이 종결되자 유교 재평가 붐이 일어나 "경영 관리의 측면에서 소중한 경험이 많다"는 식의 호평이 줄줄이 등장한다. 하지만 한때 아시아적 가치니 유교 자본주의니 하며 높이 평가받던 아시아 신흥 개발도상국들이 97년 금융위기를 겪자 유교는 다시 평가절하됐다.
현대 중국의 유교 담론은 항상 정치·경제 개혁의 지표 설정과 관련해 다양한 담론 주체들이 여론 형성 혹은 세 몰이를 위한 소재로 동원한 것이다. 그것은 조선 후기 이후 국내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어떤 담론 상황에서는 유교 비판이 사회를 계몽하려는 진보적인 것일 수 있지만, 다른 담론 상황에서는 신자유주의로의 편입을 재촉하는 우회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 끝에서 저자는 국내 동양철학계의 풍토를 '폐쇄적인 강단의 철학과 싸구려 언어로 포장한 상업적 동양철학'이라고 비판하며 '누가 글쓰기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 우리는 왜 글을 쓰는지'를 반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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