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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말고 엄마될래" "非婚母" 신풍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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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말고 엄마될래" "非婚母" 신풍속도로

입력
2004.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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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이모(39·여)씨는 최근 유부남인 대학동창생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고마웠다. 헤어지자. 아이는 내가 잘 키우마"라는 이메일을 띄웠다. 이런 경우 여자들이 "아이가 생겼으니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씨의 메일 내용은 전혀 뜻밖이다. 그는 "남편은 필요 없고 아이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상대가 유부남이어서 남자 가정에 불화가 빚어지자 이렇게 결정했다"며 태연히 웃었다.서양, 그것도 프랑스 스웨덴 등 결혼문화가 극히 진보적인 나라에서만 볼 수 있었던 비혼모(非婚母)가 우리나라에도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여성계에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통해 결혼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은 미혼모와 구분해 자발적으로 결혼을 거부하고 아이만을 선택하는 여성을 비혼모라고 부르고 있다. 아이를 낳는 계기로 볼 때 미혼모가 수동적이라면 비혼모는 주체적이며 결혼제도에 대해 미혼모가 피해자라면 비혼모는 거부자이다. '결혼은 노, 아이는 예스(No Marry Only Baby)'라는 말을 줄여 NMOB족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개인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최모(36·여)씨는 입양을 통해 비혼모가 됐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좋아했던 그는 지난해 가족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최씨는 "남자는 남편이 아닌 남자친구면 충분하지만 아이는 정말 필요한 존재라고 느껴 입양했다"며 "그러나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만 정식 입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불법으로 입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 조수미(42)씨도 지난해 비혼모가 되고 싶다는 뜻을 언론에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조씨는 "결혼은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인공수정을 해서라도 아이는 꼭 갖고 싶다"고 말했다.

조씨의 인터뷰 기사를 본 뒤 비혼모를 꿈꾸는 여성들 사이에서 인공수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정자은행을 운영 중인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백재승 교수는 "최근 들어 기증된 정자로 인공수정을 통해 아기를 낳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물어오는 여성들이 종종 있다"며 "그러나 도덕적인 문제로 절대 불가능하다고 답한다"고 털어놓았다.

비혼모는 사회가 선진화할수록 늘어난다는 것이 여성계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스웨덴은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이 절반 이하이고 프랑스의 경우는 53%의 여성이 미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인식도 변해 한국여성개발원이 지난달 1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혼남녀의 28.8%가 '아예 결혼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비혼모에 대해 젊은 여성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대학생 이혜림(25)씨는 "인공수정으로 두 아이를 갖게 된 미 여배우 조디 포스터와 비혼모를 소재로 한 영화 '싱글즈'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보고 멋있다고 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여대생들 사이에는 결혼을 하면 여자만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했다. 사업가 임모(35)씨도 "혈통 좋은 남자와 만나 아기를 낳자마자 이혼하고 아기는 내가 기르는 계약결혼도 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이혼 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은 비혼모 김모(43·여성운동가)씨는 "주변에 진보적 여성들이 많지만 내가 비혼모라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며 "비혼모임을 알리는 순간 사회에서 매장되고 말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이재경 교수는 "자의식이 강한 고학력층을 중심으로 비혼모 성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그러나 애를 낳아서 혼자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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