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죄 판결을 받은 알랭 쥐페(58) 프랑스 전 총리의 정당 재정 불법 조달 사건이 '시라크 게이트'로 확대되는 양상이다.쥐페 전 총리는 그가 파리시 재무국장으로 재임한 1988∼95년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전신인 공화국연합(PRP) 당원들을 파리시 직원인 것처럼 위장, 시 월급을 받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지난 달 30일 쥐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사태는 그가 법원의 판결이후 "유죄 선고를 받으면 은퇴하겠다"는 약속을 번복하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3일 프랑스 민영TV TF1에 출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좀 더 버틸 것을 주문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원하는데도 이를 뿌리치고 떠날 순 없다"며 "항소 중이기 때문에 법원이 판결을 내릴 때까지 내가 맡은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내가 실수를 했던 것은 확실하지만 당시 모든 정당들이 당원의 인건비를 불법으로 조달했던 풍토를 감안했을 때 집행유예 18개월은 너무 심하다"고 항변했다. 전날 시라크 대통령도 "프랑스는 쥐페와 같은 인물이 필요하며 나는 그에 대해 존경과 우정을 갖고 있다"며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자 유럽 언론들은 이 사건을 '시라크 게이트'라 부르며 시라크 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언론들은 "쥐페의 은퇴 선언 번복은 시라크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며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시라크는 대통령의 면책특권으로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뿐 쥐페보다 이 사건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쥐페를 보호하기 위한 시라크의 필사적인 노력은 시라크가 자신도 깊숙이 연루된 독직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프랑스 주간지 카나르 앙셰네도 최근 "시라크가 각료들에게 '쥐페를 희생양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며 "시라크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가 갑작스레 일치단결하는 것은 이면에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보도했다.
쥐페 전 총리는 그동안 시라크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려 왔다. 75년 시라크 총리 재임시절 총리실에서 일하면서 신임을 얻기 시작한 그는 현재 하원의원,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UMP) 총재, 파리 인근 도시인 보르도 시장을 겸직하고 있을 정도로 프랑스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또 시라크가 대통령에 취임한 1995년엔 총리로 발탁됐으며, 시라크 대통령은 그가 자신에 이어 대권을 잡아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