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입춘(入春·4일)이다. 명절 연휴의 맹추위는 간데없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도 싱그러움을 머금고 있다. 불경기로 썰렁한 연말을 보낸 탓일까, 아니면 연일 정치권에서 터져나오는 각종 비리사건 소식에 진저리가 나서일까. 봄의 상큼함에 목마른 패션마니아들은 벌써부터 올해 유행할 선글라스 사냥에 나서고 있다.
선글라스에 대한 기억들
에피소드1 9년쯤 전인가.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리조트업체를 취재하던중 잠시 짬을 내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는데 안내인으로 동반하면서 꽤 친해졌던 그 업체 홍보책임자가 별난 선글라스 예찬론을 폈다. "선글라스가 정말 좋은 건 자외선을 막아줘서가 아니라 볼 수 있는 자유를 확대시켜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걸 쓰고있으면 물에서 막 나오는 멋진 남자들의 몸매를 안보는 척, 시침 뚝 떼고도 다 볼 수 있잖아요." 그녀의 선글라스는 유난히 크고 검었다.
에피소드2 패션홍보회사 룩커뮤니케이션의 김향숙 이사는 선글라스광이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쓰는 대신 늘 머리에 끼고있다. 머리띠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글라스의 활용도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장점은 아무리 후줄근한 차림을 했어도 선글라스만 걸쳐주면 단번에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살릴 수 있다는 거예요." 김 이사의 선글라스는 그래서 계절을 타지않으며 사무실과 나이트클럽을 가리지않는다.
에피소드3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싫어서 굳이 버스타기를 고집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철 교통체증으로 하염없이 지체되는 한적한 버스에 앉아있으면 어찌나 졸립던지. 그럴 때면 어김없이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혹시나 내 얼굴을 아는 누군가에게 눈감고 조는 모습을 보이지않기 위해서. 선글라스가 참 고마웠다.
에피소드4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 패션쇼에 참석했을 때였다. 한동안 못본 다른 신문사 남자기자가 패션담당으로 왔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조명이 꺼지고 쇼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커지자 이 친구가 슬쩍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그걸 쓰고도 보여요?" "그래도 멋있어 보이잖아요." 옆에 있던 다른 기자는 그가 나이트클럽에서도 선글라스를 낀다고 귀띰했다.
2004 모던한 재키스타일 인기
유해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선글라스를 구입하는 사람은 드물다. 시력보호 기능은 기본에 속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선글라스는 계절을 타지않으며 손쉽게 변신을 완성시켜준다는 점에서 매년 봄이면 어떤 액세서리보다 먼저 손을 타는 소품이다.
패션브랜드들은 올해 선글라스 유행이 지난 시즌부터 패션트렌드의 중심에 선 60년대 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한다. 물론 더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해석되며 럭셔리 열풍에 힘입어 수작업의 느낌이 살아있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 것으로 분석한다.
유행경향은 크게 '시크& 크리스탈', '로고마니아'로 나뉜다.
시크& 크리스탈은 60년대 재키스타일의 커다란 뿔테 선글라스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것과 '보잉스타일'로 불리는 고글처럼 얼굴 윤곽선을 따라 밀착되는 스포티한 반 무테 선글라스로 나뉜다.
검정과 자주, 흰색 등 기본색상의 뿔테 선글라스는 나비매듭처럼 양쪽 끝이 바짝 치켜올라간 것부터 얼굴의 절반이상을 가릴 만큼 커다랗고 둥그런 것까지 전반적으로 복고적인 스타일에 크리스탈을 촘촘히 박아 고급스러운 수제품의 느낌을 살렸다. 샤넬, 마이클 코어스, 크리스찬 로스, 셀린느 등이 대표적인 제품들을 내놓고있다. 반면 보잉스타일은 레이밴을 비롯 마이클 코어스, 프라다, 휴고 보스 등이 다채롭게 내놨으며 금속테가 렌즈 아래를 받치는 형식의 반무테가 많이 출시됐다.
로고마니아는 로고를 장식처럼 사용해 선글라스 테와 렌즈 등에 앉힌 형태들을 일컫는다. 이미 지난해부터 인기몰이를 한 스타일. 셀린느와 로에베, 펜디, 샤넬 등 유명 브랜드는 저마다 로고를 활용한 아이템들을 내놓고있다.
이밖에 렌즈 색상이 검정이나 회색, 갈색 일변도에서 벗어나 핑크 베이지 노랑 등 파스텔 색상으로 다양화하고 한결 엷어졌다는 것도 특징이다.
최근 휴고보스, 마이클 코어스 등 유명 선글라스 브랜드가 속해있는 샤르망 아이웨어 컬렉션 행사를 치른 홍보회사 플레인의 김민정씨는 "럭셔리 트랜드 덕분에 크리스탈을 박거나 프레임에 기교를 많이 부려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것들이 인기"라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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