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는 비합법적이고 불법적인 거래를 통칭하는 말이다. 원래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로, 어두울 암(暗/やみ)의 일본어 발음이 변형된 것.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더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 야매가 방송과 만났을 때 그 재미는 생각보다 쏠쏠하다.무비플러스 ‘시네마 투데이’(금 밤 11시, 토 오후 5시, 일 밤 10시).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으로 이름을 알린 영화배우 김서형이 진행하는 영화 종합매거진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여기에 숨은 보물이 있다. ‘조원희 기자의 야매(夜昧)무비’. 오래된 영화, 절대 히트할 수 없는 영화, 소개하기 민망한 영화 등 대중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영화들을 모아 화려한 입담으로 재해석하는 코너다.
그동안 소개된 영화를 보면, ‘마스카라’ ‘고수’ ‘건달의 법칙’ ‘고무인간의 최후’ ‘가슴깊게 화끈하게’ 등이다. 영화전문 기자 조원희처럼 입담 좋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저 영화 창고 안에서 세월 따라 잊혀졌을 영화들이다. 영화 재활용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쾌한 코너다.
이번 주에는 ‘우리는 무궤도 열차에 탑승했다’(1999년)를 소개한다. 역시 낯설다. 1990년대 중반 인기 댄스그룹이었던 Ref의 성대현이 출연한 영화인데, 배우들의 옷차림이나 대사 하나 하나가 예술이다.
일례로 커피숍에서 ‘커피, 촌스럽긴, 엔젤키스 두 잔이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진행자는 “이 영화의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도대체 커피 시키는 게 뭐가 촌스러운가, 엔젤키스는 안 촌스러운가. 그런데 도대체 저 아방가르드한 언니는 누구인가”라는 식으로 읊어댄다. 놓치면 후회 되고, 한 번 보면 자꾸 기다려지는 프로그램이다.
대중문화 재활용이 빛나는 또 다른 프로그램, EtN의 ‘연예가 방담, 쏜데이 서울’(일 밤 11시). 1970, 80년대 대중잡지의 선두주자라면 단연 ‘선데이 서울’이 아니었을까.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의 세계를 넘볼 수 있는 통로였고, 성인들에게는 체면상 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연예계나 사회 저변의 소식들을 화끈하게 전해주는 주간지였다. 이를 패러디한 이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흥미로운 연예계 사건과 인물들을 소개한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김구라 황봉알 노숙자라는 세 명의 진행자가 쏟아내는 말을 따라가다 보면 한편으로는 시청자에게 너무 무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소 저급한 대화가 오가기도 하고,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는 듯 출연자끼리 반말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대중문화가 다소 하향 평준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시청자들의 알 권리와 지적(?) 호기심을 충실히 충족시켜준다는 통쾌함도 있다. ‘강남 파파라치’와 ‘쏜데이 서울 Poll’ 코너는 수다에 불과한 소재이긴 하지만 현장감이 살아있어 흥미롭다.
세상이 어렵고 힘들어질수록 ‘야매 문화’는 활기를 띤다. 각박한 세상을 견디기 버거워진 사람들이 일탈을 꿈꾸며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야매 문화다. 그렇다고 우리 인생까지 야매가 되어서는 안되겠지. 왜냐하면, 내 인생은 소중하니까.
/공희정 스카이라이프 홍보팀장
입력시간 : 2004-02-0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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