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부는 훈훈한 춤바람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홍익대 앞 '아름다운 땅고'를 운영하는 김근형씨와 탱고를 추는 성우 송연희씨.멋진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건강에도 좋고 스트레스도 날리고 아주 괜찮은 친구까지 만날 수 있는 근사한 취미생활을 발견했거든요. 눈치 채셨나요? 그래요, 바로 춤입니다.
포마드 오일, 제비, 사모님, 관광버스, 지루박, 고고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춤 하면 이런 이미지들이 연상됐죠. 한결같이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또 ‘점잖은 체면에 웬 춤?’하는 ‘먹물적 도취’도 적잖았습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댄스 교습소’를 보노라면 음습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문화센터의 춤 교습이 쑥스럽게 생각됐던 게 엊그제 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애창곡 2~3개가 없으면 촌사람 취급받듯이, 춤 하나 제대로 모르면 왕따되는 세상이 된 거죠. 이제 대한민국에서 춤은 완전히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사교를 위해, 사랑을 위해, 건강을 위해 춤이 넘쳐납니다. 별 즐거운 일이 없는 이 땅에 훈훈한 춤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있습니다.
이 신나는 바람은 식어버린 감성을 깨우고 사람 사이의 벽을 녹이며 따스한 웃음을 실어 나릅니다. 할머니와 대학생이 친구가 되고, 로맨스를 잊고 살던 중년 부부가 춤을 만나 연인 시절로 되돌아가지요. 클럽과 동호회, 음악회, 심지어 정당행사에서도 춤은 빠져서는 안될 단골손님이 됐습니다. 멋진 춤이 빠진 파티는 솔직히 뭔가 허전하고 맥빠지죠.
춤의 공간에는 외모지상주의도, 세대차도, 지역갈등도 없습니다. 그저 음악이 부르는 대로, 남들이 감동할 만큼, 멋지게 스텝을 밟을 뿐이죠. ‘몸치’라서, 민망해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춤은 사양하겠다고요? 쓸데없이 점잔 빼지말고, 건전한 사교와 즐거운 들썩임이 있는 춤의 세계를 구경하세요. 그러면 춤이 우리 삶 속으로 살짝 들어와 ‘함께 즐기자’고 손을 내밀 겁니다.‘셀 위 댄스?’생각만으로도 설레지 않으세요? 지금 당장 움직이세요.
/글·김신영기자
■ 한밤의 댄스파티
'춤꾼'들의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머리에 기름 바른 '제비'와 명품으로 치장한 '싸모님'을 떠올리는 춤 세상은 정말 옛날 얘기다.
끝자락 추위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 요즘, 흥겨운 리듬과 화려한 움직임이 있는 춤의 현장 두 곳을 찾았다. 홍익대 앞 스튜디오 '아름다운 땅고'에서 열린 주말 탱고 파티와 최근 급속도로 인기 확장 중에 있는 밸리 댄스(belly dance) 동호회 '밸리 코리아'의 1주년 기념 행사장. 길에서 만나면 도저히 친할 수 없을 것 같은, 너무 다른 듯 보이는 사람들이 오직 춤이라는 주제로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사교의 현장으로 가보자.
1월의 한 주말. 오후 9시를 넘어서자 홍익대 앞의 작은 스튜디오 '아름다운 땅고(www.argentinetango.co.kr)'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5년째 매주 금요일 이 곳에서 열리는 '밀롱가', 즉 탱고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스튜디오 이름의 첫 자를 딴 '아땅 밀롱가'는 탱고를 추는 사람 뿐 아니라 탱고 음악을 좋아하거나 탱고를 구경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도 항상 열려 있다. 파티라고 하지만 특별히 스튜디오 치장을 하거나 번쩍이는 조명을 설치한 것도 아니다. 니트 원피스, 긴 치마, 레이스가 달린 화려한 블라우스, 편안한 바지 등 복장은 가지각색이지만, 앞이 뾰족하고 굽이 높은 댄스슈즈는 모두 갖춰 신었다.
구석에 간단한 과자와 음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술은 없다. 아직 사람이 다 모이지 않은 시간. 그러나 스피커에서 절절하면서도 부드러운 탱고 음악이 흐르자 다과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은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다는 듯 발을 들썩인다. 한 쪽에서는 40대 '땅게로(Tangeroㆍ탱고 추는 남성)'가 이제 막 탱고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땅게라(Tangeraㆍ탱고 추는 여성)'에게 간단한 스텝을 가르치고 있다.
간단한 차 한잔과 함께 한주 동안의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되자 젊은 땅게로가 먼저 나선다. "자, 뭐하십니까. 우리 춤춰요."
청하는 손길에 20대 여성은 웃으며 응한다. 탱고 뿐 아니라 모든 사교댄스에서 함께 추자고 권하는 남성을 이유 없이 거절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다. 파티 시작을 알리는 공식멘트가 없어도 음악이 흐르고 사람이 하나 둘 모이니 탱고의 열기가 지하의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다.
항공사에 근무하며 약 1년 전부터 탱고를 배워온 안젤리나(28ㆍ닉네임)씨는 "탱고는 보기에도 멋있지만 스스로 추면서도 '내가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춤"이라고 말한다. 남성은 여성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배우는 기간이 꽤 걸리지만 여성이 기본적인 스텝을 배우고 밀롱가에서 탱고를 즐길 수 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개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만화 '짱구는 못 말려'에서 짱구 엄마 목소리로 잘 알려진 성우 겸 땅게라 송연희씨의 모습도 보인다. '아름다운 땅고'의 주인이자 태껸 국가지정 전수자인 김근형씨가 이날 송씨의 파트너. 약 6년 전 '탱고 레슨'이라는 영화를 보고 비디오와 책 등을 통한 독학으로 탱고를 시작해 지금은 공연과 강습까지 하는 전문 땅게로로 활동중이다. 지난 해 아르헨티나를 찾았을 때 '탱고의 전설'이라 불리는 알리시아 몬띠가 자진해 함께 추자고 제안할 정도의 실력자다.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좋아하는 탱고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깐요."
이날 모인 사람은 30여명. 추운 밤 지하 스튜디오의 철문 사이로 식을 줄 모르는 탱고의 열기가 0시 넘도록 새어 나왔다.
초등학생도, 할머니도 다 함께 흔들어요'벨리 코리아' 1주년 기념행사
"우와, 언니 그거 직접 만들었어요? 그 많은 구슬을 하나씩 붙였단 말이야?
"이거 터키에서 주문한 건데 어제 받았어요. 이 베일은 어때요? 빛깔 정말 곱지 않아?"
"엊그제 배운 '헤드 스핀'이요, 그거 잘 안되던데 어떻게 연습하세요?"
설 연휴가 끝난 지난달 25일 오후 7시, 강남구 삼성동의 '스튜디오 16'. 어린 시절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공주가 입었음 직한 화려한 의상에 각종 장식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여성 100여명이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왁자한 모임에도 이야기의 주제는 역시 춤. 그 중에서도 옷과 액세서리에 관한 내용이 유난히 많다.
'코스프레(만화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차림 따라 하기)' 모임이 아니다. 요즘 여성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벨리 댄스(belly dance), 즉 배꼽춤 동호회인 '벨리 코리아(www.bellykorea.com)' 1주년 기념 행사장이다.
벨리 댄스는 수천년 전 이집트에서 시작해 아랍 주변국으로 퍼진 춤으로 플라멩코, 살사 등의 모태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즈, 샤키라, 비욘세 등 유명 팝 가수의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여 더욱 인기다. 우리나라에는 호주와 터키에서 직접 배운 벨리 코리아 안유진 단장이 1997년 처음 들여와 지금은 어림잡아 5,000~1만 명 이상이 즐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내년에는 용인대 교양과목으로도 채택돼 안 단장이 강의를 맡았다.
동대문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다 벨리 댄스를 만난 후 가게를 접고 아예 이 길로 들어선 박은경(30)씨는 직접 만들었다는 자줏빛 옷을 뽐낸다. "우리나라는 여성들의 꾸미고 싶은 욕구를 발산할 곳이 거의 없어요. 조금만 튀는 복장을 해도 이상하게 보잖아요. 어느날 텔레비전에서 눈부신 옷을 입고 멋지게 배를 흔드는 벨리 댄서를 보고 저거다 싶었습니다. 속된 말로 '필(feel)이 꽂혔다'고나 할까요."
잔에 맥주를 채우고 다 함께 '건배'를 뜻하는 터키어 '쉐르페'를 외친 후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모임의 첫 순서는 벨리 코리아 최연소자 송지영(12)양의 솔로 댄스. 어린이의 화려한 몸놀림과 사뭇 진지한 표정에 박수가 쏟아진다. 좌중에서 작년에 일흔 잔치를 치른 최희병 할머니도 아이를 보고 환호한다. 할머니 역시 벨리 댄서다.
"작년에 넘어져 왼발 인대가 늘어난 이후 다른 운동을 찾다가 문화센터에서 벨리댄스를 알게 됐어. 노인네라고 못할 거 하나 없어. 젊은 아가씨들 사이에서 몸을 흔들다 보면 아주 신이나. 몸에 무리도 안 가구. 우리 사물놀이 소리랑 비슷한 중동 음악도 듣기 좋고."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만국공통어' 춤의 변천사
비슷한 듯 다른 수 많은 춤은 어디에서 왔을까. 또 어디로 퍼져 어떤 변화를 겪는 것일까.
플라멩코(flamenco)는 15세기 스페인 남부에 정착한 집시가 창안한 일종의 민속춤이다. 외침을 받아 인도 북부에서 쫓겨난 불운의 민족은 이집트 체코 등 여러 국가를 전전하다 스페인 남부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의 방랑문화는 독특한 음악을 탄생시켰고 음악에 박자를 맞추기 위한 발구르기와 손뼉이 춤으로 발전한 것이 바로 플라멩코다. 춤의 모양새는 완전 다르지만 탱고(tango)는 플라멩코의 종류 중 하나를 일컫는 단어였다고 한다.
탱고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유럽국가 이민자와 이들이 데리고 온 아프리카 흑인들이 모여 사는 아르헨티나에서 싹을 틔웠다. 아프리카 흑인이 추던 ‘땅가노(tangano)’라는 춤과 유럽 각국의 춤, 그리고 쿠바의 민속춤 하바네라(havanera)가 이민자의 애환을 담은 절절한 멜로디와 어우러져 탱고가 탄생한다. 처음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어둠 컴컴한 골목이나 선착장 등 빈민가의 놀이문화로 여겨져 아르헨티나 정부는 ‘품위를 지켜야 할 자리’에서 이 춤을 금지하기도 했다.
1919년 프랑스 파리에 아르헨티나 탱고 연주팀이 진출하면서 탱고는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는다. 프랑스의 탱고는 아르헨티나 탱고보다 동작이 유연하고 맵시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를 ‘프렌치 탱고’라고 불렀으며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로도 퍼져나갔다. 유럽과 남미의 탱고는 스타일이 크게 달라져 지금은 아르헨티나 탱고와 컨티넨털 탱고로 확연히 구별된다.
브라질의 ‘국민 춤’ 삼바(samba)도 포르투갈인들이 데리고 온 흑인 노예들이 그들의 민속춤을 나름대로 발전시킨 것. 리우데자네르의 상류층 인사들이 이 춤을 흡수하면서 사교 댄스 형태로 정착시켰다. 1950년대에는 영국의 마가렛 공주가 여기에 관심을 가져 유럽에서도 삼바가 인기몰이를 했다.
북미 춤은 독자적으로 발달했다. 래그타임 재즈에 흑인들이 발을 맞춘 자이브(jive)가 대표적이이며 이는 백인 사회에서도 인기를 끌어 스윙(swing)으로 진화했다. 1930년대 한 댄스 홀에서 누군가 이 춤을 ‘신경질적인 벌레(jittering bug)’이라고 부른데서 ‘지터벅(jitterbug)’이라는 이름이 유래했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에 잘못 알려져 얼마 전까지 ‘지루박’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양념처럼 살사(salsa)는 많은 춤이 뒤섞여 탄생했다. 1910년대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된 푸에르토리코인이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북미의 재즈와 라틴 음악을 섞기 시작했는데 이 새로운 음악을 살사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춤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스윙, 맘보, 룸바, 차차차 등 다양한 동작을 자연스럽게 섞어 만들어졌다. 살사는 지금도 변화 중으로 최근에는 발레, 탱고, 힙합, 브레이크댄스 심지어 태권도 동작까지 흡수해 자유분방하게 발전하고 있다.
/김신영기자
■춤, 명예회복하다
별이 총총 박힌 밤하늘 아래 바다 위를 미끄러져가는 하얀 유람선, 멋진 수염을 기른 악사들이 연주하는 감미로운 보사노바. 이때 선택은 두 가지다. 멀뚱멀뚱 앉아서 독한 술에 코를 들이밀던지, 사랑하는 그녀와 평생 기억에 남을 근사한 스텝을 밟던지. 물론 막춤으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남은 일정 중 사교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유람선 여행은 그림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춤 하나 제대로 못추는 사람이 경쟁력을 같기는 어려운 세상이 됐다. 건강이든, 사랑이든, 사교이든, 춤은 가장 다이나믹하면서 직접적인 대화수단이 됐다.
근사한 댄스 파티는 멀지 않은 곳에, 모두를 위해 열려 있다. 압구정동, 신사동이나 신촌 일대에서 춤을 위한 공간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고 각종 문화센터에선 사교댄스가 최고 인기강좌로 자리잡았다. 종류도 다양해 자이브 차차차 왈츠 탱고 탭댄스 살사 스윙에서 밸리댄스까지, 세계 각국에서 건너온 춤 중에 느낌이 통하는 것 하나만 골라 잡으면 된다.
음악, 입담, 그리고 춤
지난해 10월, 한강유람선 상에서 열린 온라인 채팅서비스 ‘다음러브(http://love.daum.net)’ 오픈 기념파티. 라틴음악 전문 밴드의 생음악이 물위로 흐르자 즉석에서 ‘아는 이들만 아는’ 살사 파티가 벌어졌다. 주최측에서 특별히 초대한 ‘춤꾼’ 100여명이 펼친 현란한 라틴 댄스 덕에 행사장에는 남국의 열기가 가득했다.
파티를 기획한 다음 엔터테인먼트팀 이유경 차장은 “요즘은 어떤 행사든 춤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모여 앉아 수다 떨며 술이나 마시는 행사에는 사람들이 만족하지 않습니다. 문화적인 만족감을 얻고 싶어하는 거죠. 음악, 재미있는 입담, 그리고 춤은 현대인이 갖춰야할 생활덕목입니다. 특히 춤은 파티 등의 흥을 돋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치예요.” 재즈 콘서트 ‘남궁연과 톡(talk) 쏘는 파티’를 기획중인 그는 재즈댄스 회원들을 이벤트에 대거 초청해 활기를 더할 예정이라고 귀띔한다.
술과 노래방으로 대변되던 우리나라의 놀이문화가 춤이라는 새로운 코드를 만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사 ‘우즈코기’ 이정민 팀장은 댄스 스포츠 소재 영화 ‘바람의 전설’ DVD를 위해 ‘춤에 빠진 사람’ 100여명을 인터뷰했다. 그는 춤이 사교문화, 특히 남성의 놀이문화를 크게 바꿀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전에는 남자가 춤을 추면 이상하게 보는 이들이 많았죠. 그러나 춤출 때 여성을 이끌어 아름다운 동작을 만들어내는 ‘리드(lead)’에 매력을 느끼는 남성이 점점 늘고 있어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즐길 수 있기에 더욱 즐거운 것이 춤입니다. 여럿이 함께 하는 운동이면서 상대와 경쟁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없구요.” 춤에 문외한이었던 그도 춤의 매력을 거부하지 못하고 4개월 전부터 살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색하지 않은 춤 바람
외국계 기업 ‘유니시티 코리아’에서 근무하는 유수진(27)씨. 그녀는 2001년 살사의 열기에 빠져든 후 생활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우선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특별한 날에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주 가는 살사 바나 동호회 ‘초보라틴댄스방(http://cafe.daum.net/chobolatin)’에서 이벤트와 파티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살사 동호회라고 늘 똑 같은 춤만 추는 것은 아니다. 할로윈에는 분장을 하고 크리스마스에는 빨간 옷을 입는 등 시기의 주제에 맞춰 아기자기한 변화를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살사 인구가 늘어 행사 규모가 눈에 띄게 커지면서 재미도 몇 배로 늘었다. 재작년부터 내년 여름 해수욕장에서 여는 대형 살사 파티가 그 한 예다.
“요즘은 외부 공연 요청도 많아졌어요. 회원 중에는 가수 콘서트, 광고 촬영장 같은 곳에 초대 받아 무대에 서는 경우도 드물지 않구요. 3월에는 모 수입자동차 행사에 손님 자격으로 와서 ‘놀아달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저희야 좋아하는 춤을 출 수 다양한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그녀는 최근 업무에도 춤을 접목시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이어트 보조 식품 ‘린 컨트롤 플러스’ 발매를 기념해 서울 대전 부산 등에서 고객에게 무료 춤 강습을 했다. 춤이 다이어트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데서 착안한 기획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적게는 80여명, 많게는 200여명이 모여 춤에 대한 관심을 실감케 했다.
나른한 40~50대의 활력을 깨운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박용우 교수(43)는 요즘 탭댄스와 살사에 푹 빠져있다. 워낙 음악이 나오면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를 본 후 정식으로 탭댄스 강습을 받았다. ‘남들보다 빨리 배운다’ ‘끼가 있다’는 칭찬에 용기를 얻어 12월부터는 살사까지 영역을 넓혀 일주일에 두 차례 살사 전문 ‘깐델라 스튜디오’에서 강습을 받고 있다.
“음악이 나오면 몸이 들썩이는 게 인간이죠. 마음의 여유는 시간이 많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40대가 아니라 50대, 60대라도 춤은 시작할 수 있어요. 자신을 사랑하고 메말랐던 감성을 다시 깨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춤을 통한 행복은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 신사동 지성한의원 정경임(56) 원장도 베테랑 댄서다. 1980년대 말 비만 클리닉을 개설한 정 원장은 재미있게 살 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춤을 만났다. 춤의 동작이 신체의 각 근육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약 7년 전부터 모던댄스와 라틴댄스를 섭렵, 비디오까지 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기구와 싸우는 것보다 늘 새로운 동작을 표현하니 훨씬 재미있죠. 재작년 3월부터는 플라멩코의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녀는 지난 여름 스페인을 직접 찾아 플라멩코의 열기를 몸으로 느끼고 왔다. 현재 한 대학원의 최고위 과정을 이수중인 정 원장은 “골프 말고 다른 사교 문화는 없겠느냐”고 푸념하는 동료들에게 춤을 배울 것을 적극 권한다. 지난 해 3월에는 우리나라 플라멩코 일인자 조광씨와 함께 공연도 가졌다.
“공연일정이 잡힌 이후 일주일에 세 차례, 밤 11시가 넘도록 정신 없이 연습했죠.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플라멩코에 일단 빠져들면 마음 깊은 곳까지 시원해지고 낮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까지 싹 사라지던걸요. 못 믿으시겠다면 한 번 해보세요.”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영화 '바람의 전설' 안무 샤리권
“영어, 피아노, 태권도도 좋지만, 자녀를 진정한 세계인으로 키우려면 춤을 가르치세요. 춤은 사람 사이의 벽을 없애주고 이야기와 정이 넘치게 하죠. 건강에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죠.”
화려한 춤의 세계를 그린 영화 ‘바람의 전설’에서 왈츠 자이브 룸바 차차차 등 가슴 설레게 하는 각종 춤을 안무한 샤리권 댄스스포츠스쿨 샤리권 원장. 영화에서 여주인공 연화(박솔미)가 풍식(이성재)의 스텝에 빠져든 것처럼 춤은 그의 20대 끝자락에 갑자기 다가왔다.
“18년 전인가요. 전형적인 사무직 회사원으로 지루하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댄스스포츠 세계 챔피언십 비디오 테이프를 보게 됐습니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게 저거다 싶었어요. 당장 회사 때려치고 학원에 등록해서 청소부터 해가며 춤을 시작했죠.”
댄스스포츠는 각국의 민속춤에 스포츠적 요소를 가미한 사교용 춤을 뜻한다. 당시 스승이었던 김종기 전 한국교육협회 회장은 “춤이 나중에는 올림픽 종목이 될 것”이라며 힘들어 하던 권 원장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 댄스 스포츠가 1998년 아시안게임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고 2008년에는 올림픽 정식종목으로도 당당히 이름을 올릴 예정이라니 그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1988년 춤을 위해 일본으로 뜬 그녀는 일본 댄스교사 자격증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 본격적인 프로 댄서의 길에 들어섰다. 권 원장이 귀국한 것은 91년.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나라의 춤 문화는 깜짝 놀랄 정도라고 말한다.“술 먹고 노래방 가고 골프치고…. 이제는 지겹지 않으신가요? 춤의 멋진 세계에 한 번 빠지면 자신감이 생기고 남녀노소 간의 벽이 무너집니다.”
“부부는 물론,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이 함께 할 수 있으니 가족간의 틈을 메워주고 스텝을 외우면서 춰야하기 까닭에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말하는 그는 ‘몸치’라서 못한다는 걱정은 접어두라고 강조한다.
“영화에서 멋진 춤을 선보인 이성재씨도 평발에 엄청난 몸치였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같이 나와 열심히 스텝을 밟더니 몇 개월 만에 프로 댄서 못치 않은 춤꾼이 됐죠. 자, 모두들 오세요. 춤의 세계에 바로 옆에 있어요.”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아르헨 태권도 사범서 '탱고 전도사'된 공명규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다. 수수한 옷차림에 털털한 말투까지, 무대를 누비며 화려한 스텝을 밟는 ‘땅게로(Tangeroㆍ탱고를 추는 남성)’의 모습은 찾기 힘든다. 그러나 역시 탱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눈빛부터 달라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입에 장미 물고 허리 꺾는 관능적인 춤은 오리지널 탱고가 아닙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애환과 슬픔, 만날 수 없는 가족을 향한 애절함이 절절이 배어있는 춤이 바로 탱고, 정확히 말하면 ‘땅고’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지요.”
1980년 태권도 보급을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난 지 17년 만에 ‘탱고 전도사’로 변신해 돌아온 공명규씨. 지금은 탱고 댄서로 이름을 날리지만 그는 사실 아르헨티나 프로골프 투어(Argentina PGA)에도 등록돼 있다. 1996년 투어에선 6위까지 했으니 대단한 실력이다.
돈 잘 버는 프로 골퍼에 아르헨티나 육군 사관학교의 태권도 사범으로까지 이름을 날리던 그를 네 박자 스텝을 밟는 땅게로로 변신하게 한, 이 춤의 매력은 무엇일까.
● 춤과 함께 움직이는 사회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른바 ‘상류사회’의 파티에 초대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모임만 있으면 라이브 오케스트라를 불러 탱고를 추는 겁니다. 그냥 앉아 있는 것도 창피했지만 음악을 듣고, 또 춤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 깊숙이 견딜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게 몰려오더군요.”
감정적인 끌림도 있었지만 진정한 필요성은 실생활에서 절실히 느끼게 됐다. 이민사회인만큼 동양 민족간의 알력다툼이 적지 않았는데 중요한 계약에서 교포들이 번번히 일본인에게 밀렸던 이유가 춤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민 역사가 길고 남의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일본인과 달리 우리 교포들은 춤 문화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아르헨티나 사회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책상 머리에서 백마디 나누는 것보다 탱고 한번 같이 추는 게 사람 사이의 간격을 훨씬 좁혀줍니다. 중요한 정보도 탱고가 없으면 얻기 힘들었죠.”
주말이면 한 집 건너 하나씩 ‘밀롱가(모여서 탱고를 추는 곳)’가 열리는 탱고의 본고장 아르헨티나에서 그는 7년 동안 수업을 쌓은 뒤 귀국을 결심했다. 사교문화가 단조로운 한국에 만국 공동언어로 일컬어지는 춤, 그 중에서도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탱고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 춤 불모지 한국에 탱고의 매력을
부푼 꿈을 안고 귀국했지만 여건은 만만치 않았다. 1997년만 해도 한국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카바레, 불륜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는지 탱고 댄서라고 소개하면 십중팔구 탐탁치 않은 눈초리가 뒤따랐다.
“제 돈을 털어 아르헨티나에서 탱고 댄서들을 불러 수 차례 공연을 하면서 춤에 대한 나쁜 편견부터 깨려고 힘썼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말렸죠. 몸을 밀착하고 추는 춤을 곱게 볼 리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탱고의 매력은 결국 완강하던 편견의 벽을 깼다. 공연을 통해 가슴을 울리는 탱고 음악과 애환이 서린듯한 몸짓을 접한 사람들이 하나 둘 배우겠다고 공씨를 찾았고 입 소문을 통해 급격히 인구가 확장돼 6년간 수천명의 제자들이 그를 거쳐갔다. 작년 11월에는 가르친 이들과 함께 하얏트 호텔에서 ‘공명규 탱고의 밤’이라는 이름을 건 디너쇼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탱고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영광도 얻었다.
● 나이 들수록 깊은 맛 배어나
“말이 통하지 않아도 걱정 없습니다. 탱고만 알면 세계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거든요. 나이도 중요하지 않아요. 탱고의 깊은 맛은 오히려 연세 지긋하신 분들에게서 느껴집니다. 나이 들수록 멋지게 출 수 있고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간격을 일순간 허물 수 있는 것이 바로 탱고의 매력입니다. 걸음걸이가 똑발라지고 군살이 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는 올해 한국인과 아르헨티나인이 한 무대에 서는 대륙간 탱고 공연을 추진중이다. 작년 공연에서 ‘목포의 눈물’을 탱고 음악으로 편집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경험을 살려 ‘아리랑’ 같은 민요도 탱고 스텝에 맞춰볼 예정이다. 국내 공연을 마치고 아시아, 남미 등으로 순회공연을 떠난다는 원대한 꿈도 갖고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고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작년에 아르헨티나와 무비자 협정도 체결한 만큼 탱고 스텝을 배워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밀롱가에서 그들과 탱고를 즐겨보십시오.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영화·오페라속 댄스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는 춤은 가장 잘 팔리는 문화상품 중의 하나다. 영화에 춤이 등장하면 재미가 두배가 되고 진부한 러브스토리도 춤을 만나면 그럴듯하게 포장된다.
일본 여배우 쿠사키리 타미요의 “샤리단스(Shall we dance?)”라는 어설픈 영어가 인상적인 영화 ‘쉘위댄스’는 전형적인 춤 영화다. 여기에 등장한 룸바, 차차차, 자이브 등 각종 사교댄스로 일본 열도가 한때 열병을 앓았다. 감독 수오 마사유키는 한 인터뷰에서 “직장인들은 회사 말고 어디서 다른 사람을 만날까”라는 궁금증에서 영화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향기만으로 여성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장담하는 시각 장애인 퇴역장교 프랭크(알 파치노)의 자살 여행 이야기를 다룬 ‘여인의 향기’. 프랭크가 한 식당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탱고를 추는 모습은 잊기 어려운 명장면이다. 영화에서 프랭크가 선보인 탱고는 남미에서 유럽으로 넘어가 변형된 스포츠 탱고. 아르헨티나 오리지널 탱고와는 거리가 있다.
정통 아르헨티나 탱고의 매력에 젖고 싶다면 현대 무용을 공부한 샐리 포터 감독이 연출 각본 주연을 맡은 ‘탱고 레슨’을 보자. 주인공 샐리가 탱고를 배우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사랑의 이야기로 대표적 추천영화로 꼽힌다. 샐리의 스승 파블로의 “내가 탱고를 선택한 게 아니야, 탱고가 나를 선택한 거지”라는 대사와 탱고의 황금기에 직접 연주된 오리지널 탱고 음악이 가슴을 울린다.
미국식 라틴댄스를 그린 영화 ‘댄스위드미’, 히틀러와 나치가 독일을 점령하던 암울한 시대에 밤마다 스윙을 추러 나가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윙 키즈’, 비지스의 음악에 맞춰 존 트라볼타가 ‘찌르기’를 선보이는 디스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도 빼놓을 수 없다.
4월 개봉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중인 영화 ‘바람의 전설’은 댄스 스포츠를 다룬 영화다. 춤바람 난 경찰서장 부인의 사건을 잠복 수사하는 미모의 여형사 연화(박솔미)가 ‘대한민국 일류 댄서’를 자청하는 풍식(이성재)을 만나 춤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줄거리로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댄스 스포츠 장면이 기대된다.
스페인 최고의 플라멩코팀이 출연하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도 5월 잠실 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야외 공연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집시 여인 카르멘과 순수한 청년 호세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이 오페라는 유럽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정통 플라멩코를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카르멘이 호세를 유혹하며 부르는 ‘하바네라’, 체포된 카르멘이 자신을 호송하는 호세에게 도망가게 해달라며 부르는 ‘세기딜랴’ 등 귀에 익숙한 명곡도 놓칠 수 없다.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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