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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24>말로

입력
2004.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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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년 2월6일 영국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가 캔터베리에서 태어났다. 1593년 몰(沒). 말로는 그 당시엔 일종의 특권이었던 대학 교육의 혜택을 받은 이른바 대학재사(大學才士: university wits)에 속했다. 중산층 출신의 동갑내기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문법학교에서 고전 라틴어 교육을 받은 뒤 가세가 기울어져 학업을 중단한 데 비해,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난 말로는 장학금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다.29살로 마감한 말로의 생애는 평탄치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정보 기관에 줄을 대고 있었다는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는 한 술집에서 술값을 두고 벌어진 싸움 와중에 경찰 정보원에게 찔려 죽었다. 한편으론 공공연히 무신론을 설파해, 죽은 뒤에 체포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말로는 앞에 '대학'이라는 말이 붙든 안 붙든 비범한 '재사'였다. 그는 당대 연극의 주류였던 작위적 대사의 희극 흐름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박진감 있는 대사로 극적 갈등을 창출하며 인간의 내적 욕망을 극한까지 보여주었다. 그 욕망은 '몰타섬의 유대인'(1589)에서는 물욕이었고, '탬벌린 대왕'(1590)에서는 정복욕이었으며, '포스터스 박사'(1592)에서는 지식욕이었다. '포스터스 박사'는 그 즈음 독일에서 완성된 파우스트 전설에 최초로 본격적 문학의 옷을 입힌 작품이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말로의 집요한 탐구는 셰익스피어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말로에게는 두 가지 불행이 있었다. 첫째는 그의 요절이다. 말로는 짧은 문필 활동을 통해서 엘리자베스조 비극 문학의 바탕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가 오래 살았다면 문학사는 그에게 훨씬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을 것이다. 둘째는 셰익스피어다. 세계문학사의 걸출한 인물을 동갑내기로 두는 바람에, 말로의 업적은 어쩔 수 없이 빛이 바랬다.

고종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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