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령성 단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13차 장관급 회담을 위해 서울에 오신 김 단장님을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저는 2001년 8월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부문별 상봉 모임에 저는 남측 민화협의 학계 대표로 참석했고 김 단장님은 북측 민화협 부회장 자격으로 자리를 함께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빡빡한 일정으로 몹시 고단했는데도 김 단장님은 열의와 성심을 갖고 남측 민화협 대표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눴던 것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8·15 행사 직후 김 단장님은 5차 장관급 회담부터 북측 수석대표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13차 장관급 회담을 앞두고 남북 대표단은 사실 적잖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관급 회담 직전까지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2차 6자 회담이 불투명한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주위의 압력이 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단장님이 서울에 도착하기 직전 북측의 2차 6자 회담 수용 사실이 알려졌고 그로 인해 장관급 회담에 임하는 남북 대표단의 어깨는 그만큼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장관급 회담에서는 북 핵 문제라는 뜨거운 감자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남북간 협력사안을 내실 있게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차 6자 회담이 교착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남북의 대표단이 북 핵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여야 했고 그렇다면 사실상 장관급 회담의 의미 있는 합의는 뒷전으로 미뤄졌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북 핵 문제 해결은 북미의 상호양보를 통해서만 평화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다 알고 있고 이에 대한 이행의지도 있는 만큼 타협의 여지는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협상당사자인 미국의 양보의사가 불투명하고 동시행동 의지가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측의 안타까움과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원칙을 강조하는 것과 함께 불만족스럽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원만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동시양보 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면 오히려 북측이 선 양보 조치를 취함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갖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입니다.
단장님도 잘 알다시피 이미 북측은 지난 해 말부터 동시행동 순서의 첫 단계 조치라도 합의하자면서 핵 동결 의사를 분명하게 피력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도 불만입니다만 현실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북측이 이번 6자 회담에서 핵 동결뿐 아니라 핵 폐기도 수용가능하다는 것을 명백히 선언한다면 미국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측이 못 미더워 하는 이후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해서는 남측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 회담 참가국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측은 금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민족공조'를 그 어느 때보다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상정하고 남북의 공조를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실현가능한 남북공조는 북 핵 문제 해결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핵 문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김 단장님이 아쉬워하는 것처럼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민족공조는 북 핵 공조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으면 합니다.
이미 남북의 대표 사이에는 오래된 친구와도 같은 개인적 신뢰가 구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창한 민족공조도 사실은 인간적인 친숙함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서로 못할 말이 없을 정도로 친해진 두 분 대표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의 고민을 함께 하는 허심탄회한 만남의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부디 건승하십시오.
김 근 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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