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하락세에도 불구, 원·엔 환율은 사실상 외환위기 이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수출에 보다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환율이 원·엔인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환율 움직임이 우려만큼 전체 수출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때문에 '수출고사'를 이유로 환율을 인위적으로 떠받치는 당국의 외환정책은 설득력이 약하며, 오히려 수출기업들의 환율의존 심리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엔 평균환율은 지난해 12월 100엔당 1,105.52원, 1월엔 1,110.70원으로 두달 연속 1,100원을 넘어섰다. 급속한 엔고(高)가 진행됐던 99년 4·4분기를 제외하면, 현재의 원·엔 환율은 사실상 환란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보다 엔·달러 환율(달러당 105엔대)이 더 빠르게 내려가다보니, 원화가 달러화에 대해선 강세임에도 불구하고 엔화에는 유례없는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10대1 법칙의 붕괴
외환위기 이후 원·엔의 가치는 대략 10대 1(100엔당 1,000원) 안팎에서 움직여왔다.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주력수출상품이 크게 중복되는 상황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원·엔 환율이 10대1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요구였고 외환당국도 이를 수용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시장개입강도가 높아진 작년말 이후 10대1 공식은 깨졌으며 현재 원·엔환율은 11대1을 웃돌고 있다. 과거 외환시장을 담당했던 한 정부관계자는 "환란이 진정된 이후 100엔당 900원대로 내려간 적도 많았다. 엔화 절상폭을 감안하면 당국이 지나치게 환율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하락이 중국과 경쟁하는 가격의존형 중소수출업계에는 타격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원·엔 환율 상승으로 일본과 경합하는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져, 국가 전체 수출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만성적 환율의존
소니 이데이 회장은 올초 "극단적 엔고는 문제가 크지만 달러당 100엔 정도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80년대 중반 환율이 단숨에 절반수준으로 곤두박질치는 악몽(플라자 합의)을 경험했던 일본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원가절감을 통해 100엔 이하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전 달러당 800원대에도 수출을 해왔던 국내 기업들은 현재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극소수를 제외하곤 1,100원도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업계가 주장하는 최저환율은 1,180원대다.
수출부양을 위한 정부의 환율지지정책이 기업들의 원가절감 및 기술혁신 동기를 떨어뜨렸으며, 결국 '고환율 중독증'에 걸리게 했다는 지적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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